[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의대 진학도 저축도 필요 없어진다는 일론 머스크의 발언이 세간에 화제다.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그리는 UBI(보편적 기본소득)의 미래는 인공지능(AI)이 모든 일을 대신 하고 인류는 노동에서 해방되는 그림이다.
머스크는 "선의의 시나리오에서는 아마 우리 누구도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샘 올트먼은 "앞으로 모든 사람의 삶이 지금 누구의 삶보다도 나아질 수 있다"고 장담한다.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그리는 UBI(보편적 기본소득)의 미래는 인공지능(AI)이 모든 일을 대신 하고 인류는 노동에서 해방되는 그림이다.
머스크는 "선의의 시나리오에서는 아마 우리 누구도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샘 올트먼은 "앞으로 모든 사람의 삶이 지금 누구의 삶보다도 나아질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AI 도구를 이용해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국의 실험 결과와 재정 데이터를 심층 분석한 결과를 보면 유토피아는 현실감을 잃는다. 지금 실리콘밸리가 말하는 방식의 UBI는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권력 구조 측면에서도 상당히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이다.
먼저 돈 문제부터 보자. IMF는 2018년 작업 문서에서 "순중위소득의 25% 수준"으로 UBI를 도입한다고 가정할 때 선진국에서 필요한 재정 비용은 평균 국내총생산(GDP)의 6~7%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소득 분배를 상당히 개선하고 빈곤을 줄이는 효과는 있지만 그 대가로 매년 국가 전체 생산의 십분의 6~7을 추가로 현금으로 뿌려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IMF 자료와 학술 분석에서도 선진국 기준 UBI의 총비용은 대체로 GDP의 6.5% 안팎으로 잡힌다. 현재 대부분 나라에서 사회안전망 지출이 2~3%대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보다 복지 규모를 두 배 이상 키우는 수준이다. 실리콘밸리의 렌더링에서는 "AI가 창출하는 부를 나눠 갖는다"는 한 줄로 처리되지만, 실제로는 조세와 지출 구조 전체를 뒤집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그리는 AI와 UBI의 유토피아 [AI 일러스트=황숙혜 기자] |
그렇다면 'AI가 다 벌어준다'는 주장은 어떤가. 올트먼은 AI가 '중간 수준 인간(median human)'의 일을 자동화해 막대한 부를 창출할 것이라며, 그 부로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머스크 역시 AI가 대부분의 일자리를 가져가면 UBI가 필요해질 것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러나 이 그림이 실현되려면 몇 가지 전제가 따라붙는다. AI와 로봇이 만든 부가 실제로 세금과 공공 재원으로 이전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글로벌 법인세 회피와 조세 경쟁, 조세 회피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 그 부가 특정 기업·자산가에게만 쌓이지 않고, 정치적으로 감당 가능한 방식으로 재분배되어야 한다. 현실의 재정·정치 구조를 보면, 이 전제들은 기술적 난제가 아니라 권력 투쟁의 문제다.
실험 결과도 마냥 장밋빛이 아니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참가자 2000명에게 2년간 무조건적 현금을 지급했는데, 고용 수준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지만 스트레스와 건강, 미래에 대한 자신감 등 14개 '안녕 지표'가 개선됐다는 결론을 냈다.
미국 스톡턴의 SEED 프로젝트나 여러 OECD 국가의 파일럿에서도 비슷하게 삶의 만족과 정신 건강, 금융 스트레스 완화에는 분명 이점이 있지만, 노동시장 참여나 구조적 불평등 해소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즉, UBI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 것이라는 도식도 틀렸지만, 반대로 UBI가 자동으로 노동 문제와 불평등을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도 현실과 거리가 있다.
캐나다 싱크탱크 CIGI는 "실리콘밸리의 거짓 예언자들"이라는 글에서, 올트먼이 AI로 기후변화·빈곤·우주 진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동시에, 자신이 수십·수백억 달러 가치의 지분을 확보하려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논지는 단순하다.
이들의 유토피아는 '충분한 자원을 우리에게 맡겨만 준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고, 그 자원은 곧 세상 돈, 데이터, 연산 자원, 인프라 결정권을 의미한다. 같은 글은 머스크가 AI와 UBI를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고지위 남성(high status males)이 지배하는 정부'를 언급해 온 발언까지 묶어 이들의 미래 비전이 민주적 통제보다는 테크 엘리트의 권력 집중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UBI 논의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또 하나의 비현실성은 누가 설계하고, 누가 통제하는가의 문제다. 최근 한 윤리·정책 논문은 머스크와 올트먼 같은 AI 엘리트들의 UBI 지지를 '상징적 폭력'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요지는 이렇다. AI가 일자리를 파괴해 경제적 피해를 입히는 구조를 만든 당사자들이 그 피해를 약간의 현금 지급으로 보상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문제의 원인이었던 권력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오히려 정당성을 얻는다. 현금을 주는 손이 소득뿐 아니라 정보·알고리즘·인프라를 쥔 채, 사회 전체의 의존과 감사를 빨아들이는 모양새가 된다. 월급 대신 용돈을 받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재정·정치·권력 구조를 모두 감안하면 현실적인 경로는 오히려 '좁고 깊은' 맞춤형 안전망 강화에 가깝다는 연구가 많다. IMF의 재정 모니터는, UBI를 전면 도입하는 것보다 기존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보완하고, 실업·재교육·아동·노인·질병 등 특정 리스크에 더 두껍게 대응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OECD와 여러 연구도, 제한된 재정에서 보편 현금보다 타깃형 지원이 빈곤·불평등 완화에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머스크와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그리는 버전의 UBI 담론에는 AI가 알아서 벌어오는 돈을 기술 엘리트가 나눠준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 전제가 되는 재정·조세·권력 구조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은 거의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shhwa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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