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비 랩스(Dolby Labs)가 2025년 9월 돌비 비전 2(Dolby Vision 2)를 발표했을 때, 솔직히 그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기존 돌비 비전은 효과가 분명했다. TV와 스트리밍 콘텐츠가 돌비 비전을 지원하면 더 밝은 화면과 풍부한 색상 디테일을 제공했고, 특히 어두운 영역과 밝은 하이라이트에서 차이가 뚜렷했다. 2014년 CES에서 처음 공개됐을 당시를 떠올리면, 당시 TV 제조사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4K 디스플레이나 커브드 패널과 비교해도 돌비 비전의 인상은 단연 강렬했다.
그에 비해 돌비 비전 2가 약속하는 개선점은 명확하지 않다. 돌비가 발표한 초기 보도자료에는 ‘콘텐츠 인텔리전스(Content Intelligence)’나 ‘어센틱 모션(Authentic Motion)’ 같은 전문 용어가 다수 등장하지만,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무엇인지는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다행히 CES 2026에서는 돌비 비전 2를 직접 확인하고 기존 돌비 비전과 비교하며 여러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돌비 비전 2의 이점은 여전히 다소 불투명한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현재 스트리밍 영상 시청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 몇 가지 불편을 해결하려는 방향인 것은 분명하다.
HDR의 ‘어두움 문제’에 대응
HDR(High Dynamic Range)는 화면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과 가장 밝은 부분의 차이를 크게 벌리고, 그 사이의 색상 디테일을 더 풍부하게 표현하는 기술로, 현재 대부분 최신 TV에 적용돼 있다. 예를 들어 폭발 장면에서는 화면이 하얗게 날아가는 대신 더 선명한 빨강과 주황이 살아나고, 어두운 장면에서는 탁한 회색 대신 분위기를 살리는 파랑과 초록 계열의 색감이 표현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기존 돌비 비전을 비롯해 HDR10, HDR10+, HLG(Hybrid Log Gamma) 등 거의 모든 HDR 포맷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된 불만은 어두운 장면이 지나치게 어둡게 보인다는 점이다. 돌비가 내놓은 해법은 콘텐츠 제작 환경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재생 시 밝기 조정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제작자가 어떤 기준 모니터를 사용했는지, 색 보정 작업실의 주변 조명이 어느 정도였는지 같은 요소를 고려한다.
이 접근 방식의 목적은 고가의 편집 스튜디오에서 제작자가 확인한 화면과 가정용 TV에서 시청자가 실제로 보는 화면 사이의 차이를 보정하는 데 있다. 돌비 비전 2는 기존 HDR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된 ‘너무 어두운 화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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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의 비즈니스 전략 디렉터 요나스 클릿마르크는 “우리는 어떤 그림자가 의도된 것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정확히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저가형 TV에서도 HDR 품질 개선
기존 돌비 비전은 일반적으로 중급 이상급 TV에서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했다. 반면 돌비는 새로운 톤 매핑 엔진을 적용해 돌비 비전 2를 보다 저렴한 TV에 최적화하고 있다. 이 엔진은 제작자가 제공한 추가 메타데이터와 로컬 톤 매핑을 결합해, 픽셀 단위에서 색상과 밝기를 더욱 세밀하게 조정한다. 로컬 톤 매핑은 HDR 이미지에 포함된 넓은 밝기와 색상 범위를 분석한 뒤, 시청 중인 TV가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해당 데이터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고가형 TV가 아니더라도, 화면 전반에서 보다 균형 잡힌 HDR 표현을 구현하는 것이 돌비 비전 2의 목표다.
CES 현장에서 진행된 시연에서는 로컬 디밍 존(Local Dimming Zone)이 전혀 없는 250달러 수준의 TV에서도 눈에 띄는 차이가 확인됐다. 기존 돌비 비전을 적용한 유사한 TV와 나란히 놓고 비교했을 때, 돌비 비전 2를 적용한 화면이 더 선명하고 생생한 색감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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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클릿마르크는 “이 새로운 엔진은 이처럼 표현 성능이 제한적인 디스플레이에서도 원본 HDR 소스가 가진 이점을 훨씬 더 잘 유지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톤 매핑 엔진은 돌비 비전 2에 또 하나의 새로운 기능을 제공한다. TV 설정 메뉴의 슬라이더를 통해 HDR 효과의 강도를 사용자가 직접 조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많아 화면 반사가 심한 환경에서는 효과를 높일 수 있고, 화면이 지나치게 눈부시게 느껴질 경우에는 강도를 낮출 수 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움직임 구현
돌비 비전 2의 기능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HDR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어센틱 모션(Authentic Motion)’이라 불리는 이 기능은 빠른 움직임이 많은 장면에서 화면이 끊겨 보이는 현상을 줄여 보다 부드러운 영상을 구현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화면의 끊김 현상을 ‘저더(judder)’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스마트 TV에 적용된 모션 스무딩 효과와 달리, 돌비의 이 기능은 과도한 보정을 피한다. 일반적인 모션 스무딩은 화면이 지나치게 매끄러워져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질감을 주는 경우가 많지만, 돌비 비전 2는 콘텐츠 제공자가 전달한 메타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장면에서만 소량의 프레임 보간을 적용한다.
CES 시연에서는 카메라가 실내를 가로질러 이동하는 영화 장면이 공개됐다. 기존에는 흔히 나타났던 저더 현상 없이 화면이 부드럽게 이어졌지만, 영화 특유의 질감은 그대로 유지돼 여전히 시네마틱한 인상을 줬다.
클릿마르크는 “돌비 비전 2에서는 메타데이터를 활용해 저더 제거 강도를 동적으로 조절한다”라며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가장자리를 다듬듯 보정해 시청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했다”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기준’을 노리는 돌비 비전 2 맥스
돌비 랩스는 표준 돌비 비전 2와 함께 보다 고급형 버전인 ‘돌비 비전 2 맥스(Dolby Vision 2 Max)’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두 버전은 대부분의 기능을 공유하지만, 돌비 비전 2 맥스는 TV에 내장된 주변광 센서를 활용해 화면을 추가로 조정한다. 장면이 지나치게 어둡게 보이지 않도록 보완하는 방식이다. 이는 이미 많은 중·고급형 TV에 적용돼 있는 돌비 비전의 확장 기술인 돌비 비전 IQ(Dolby Vision IQ)를 한 단계 발전시킨 개념에 가깝다.
돌비 랩스는 ‘맥스’가 과거 돌비 비전처럼 TV 화질 수준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돌비 비전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많은 TV가 HDR 지원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밝기나 색 표현이 충분하지 않아 HDR 영상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돌비 비전 지원 여부는 만족스러운 HDR 화질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활용됐다. 이제 돌비 비전 2가 보급형 TV까지 확대되면서, 돌비는 ‘맥스’라는 라벨이 화질이 한층 뛰어난 TV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설명이다.
돌비의 홈 디바이스 부문 부사장 크리스 턱스트라는 “돌비 비전 2 맥스는 프리미엄 TV를 위한 기술로, 시장에서 기존 돌비 비전을 사실상 대체하게 될 것”이라며 “돌비 비전 2는 돌비 비전을 아직 지원하지 않는 신규 TV에 적용되는 표준 버전으로 이해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돌비 비전 2, 당장의 변화는 아니다
TV 제조사와 스트리밍 서비스가 점차 돌비 비전 2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도입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까지 돌비 비전 2 지원을 공식화한 TV 제조사는 3곳에 불과하다. 하이센스는 2026년형 최상위 RGB 미니 LED TV에 돌비 비전 2를 적용할 계획이며, TCL은 고급형 X11L SQD 미니 LED 모델과 주력 C 시리즈에 이를 도입한다. 파나소닉 역시 여러 신형 OLED TV에 돌비 비전 2를 탑재할 예정이다. 다시 말해, 돌비 비전 2가 보급형 TV까지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는 당분간 현실화되기 어렵다.
한편 LG, 삼성, 소니 등 다른 주요 TV 제조사 3곳은 아직 돌비 비전 2 도입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특히 삼성은 현재까지도 돌비 비전의 어떤 버전도 지원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돌비에 로열티를 지불하는 데 부담을 느끼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콘텐츠 측면에서는 현재 피콕(Peacock)만이 돌비 비전 2 도입에 나선 유일한 스트리밍 서비스다. 피콕은 라이브 스포츠 콘텐츠에서 기존 돌비 비전과 함께 돌비 비전 2를 지원할 계획이다. 다만 콘텐츠 제작 단계에서도 돌비 비전 2를 함께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참여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2026년에 새 TV 구매를 고민하는 소비자에게 돌비 비전 2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는 아직 어려워 보인다. 다만 향후 몇 년에 걸쳐 이 포맷이 점차 확산한다면 TV 선택 과정에서 한 번쯤은 고려해 볼 만한 요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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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red Newman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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