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남성 1명 포함 32명 숨져
15일 태국 나콘라차시마주(州) 고속철도 공사 사고 현장. 전날 무너진 크레인과 충격으로 파괴된 고가철도 구조물이 사고 당시 참상을 보여주고 있다. 공사 중이던 철도는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방콕까지 이어지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부로, 오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었다. 이 사고로 한국인 1명을 포함한 32명이 목숨을 잃었다./AP 연합뉴스 |
지난 14일 태국 북동부 나콘라차시마주 고속철도 공사 현장에서 대형 크레인이 여객 열차를 덮치는 사고로 희생된 32명 중 한국인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태국 한국 대사관에 따르면 40대 한국 남성이 태국인 아내와 혼인 신고를 마치고 열차에 올랐다 변을 당했다. 이번 사고는 중국의 대외 팽창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하나로, 중국 윈난성과 태국·라오스·말레이시아·싱가포르를 연결할 목적으로 건설되는 ‘범아시아 철도망’의 일부다. 기존 태국 철도 위로 고속철도 구간을 올리는 공사를 하면서 기존 열차 운행을 통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고속철 공사는 2017년 착공 후 자금 조달 차질과 잦은 설계 변경으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예상 완공 시기도 2021년에서 2030년으로 9년 늦춰졌다. 사고 발생 다음 날인 15일 방콕 인근 사뭇사콘주 고가도로 건설 현장에서 역시 크레인이 넘어지며 차량을 덮쳐 두 명이 숨졌다. 이 사고는 일대일로와 관련은 없지만 시공 업체가 전날 고속철 크레인 사고를 낸 회사로 밝혀지면서 국민적 분노가 일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그래픽=김현국 |
이번 사고를 계기로 중국이 일대일로 일환으로 전 세계에서 완공했거나 시공 중인 철도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삐걱대는 상황도 재조명되고 있다. 철도는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주창으로 시작된 일대일로의 핵심 분야다. 하지만 시공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거나, 완공된 철도 운영 과정에서 각종 문제점이 발생하는 경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동남아 일대일로 철도 사업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 고속철도는 2023년 1단계 자카르타~반둥(142㎞)이 완공됐지만, 공사 때부터 각종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의 핵심 리스크가 되면서 사법 처리 대상이 될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시진핑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시승하고 두 달 뒤인 2022년 12월 시운전 중 탈선 사고로 근로자 두 명이 숨졌다. 토지 수용 등이 미뤄지면서 공사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당초 책정했던 사업비에 17억달러(약 2조5018억원)가 추가됐고, 이는 정부의 재정 부담이 되며 민심이 악화했다. 급기야 인도네시아 부패방지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사업 전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AFP 연합뉴스지난 14일 태국 나콘라차시마주(州) 고속철도 공사 사고 현장. 크레인이 덮쳐 파괴된 여객열차가 사고 당시 참상을 보여주고 있다. 공사 중이던 철도는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방콕까지 이어지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부로, 오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었다. 이 사고로 한국인 1명을 포함한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과 중국 윈난성을 잇는 414㎞ 고속철도도 2021년 완공 이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사 기간 중 최대 7000가구가 강제 이주당했고, 공사 기간 동안 중국 근로자와 현지 주민의 마찰이 이어졌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유명 관광지 방비엥 부근에서 오염 물질이 유출되는 등 환경 파괴 논란도 있었다. 사업비는 중국과 라오스가 7대3으로 분담했고, 라오스는 대부분을 장기 대출로 중국 은행에 갚는 구조다. 이 때문에 라오스도 그리스·파키스탄·스리랑카 등에 이어 일대일로에 참여했다 빚더미를 떠안는 사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스는 “고속철도 개통으로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지만 라오스는 빚을 짊어졌고, 미래가 불투명한 라오스인들이 점점 고국을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비슷한 상황은 아프리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안보 전문 매체 아프리카 디펜스 포럼은 최근 일대일로로 현대식 철길을 건설한 케냐가 처한 상황을 소개했다. 2017년 항구 도시 몸바사에서 수도 나이로비를 지나 남서부 도시 나이바샤를 잇는 592㎞ 철도가 완공됐다. 장기적으로 부룬디·르완다·남수단·콩고민주공화국과의 연결이 계획됐다. 8년이 지난 현재 이 철도는 케냐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 사업으로 케냐의 대중국 부채는 아프리카 국가 중 넷째로 많은 96억달러(약 14조1321억원)까지 증가했다. 올해 상환해야 할 돈만 10억달러에 이른다. 재정난으로 2단계가 지연되면서 현지에서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철도’라는 자조적인 별명까지 등장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동유럽 세르비아에서는 2024년 11월 제2 도시 노비사드 기차역 야외 콘크리트 지붕이 무너져 15명이 숨졌다. 일대일로의 일환으로 철도 정비를 수주한 중국 기업이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재개장한 지 5개월 만에 벌어진 사고였다. 부실 공사를 규탄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수개월간 이어졌다. 결국 지난해 1월 밀로스 부세비치 총리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일대일로 철도 프로젝트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착공과 준공이 예상보다 지연되는 상황이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연결 철도가 이런 경우다.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시작해 키르기스스탄을 지나 중국 신장위구르 카슈가르를 연결하는 523㎞ 철도 착공식이 지난해 12월 27일 키르기스스탄 잘랄아바드에서 열렸다. 1997년 3국 간 양해각서 체결을 계기로 추진된 이 사업은 일대일로 핵심 사업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사업비 분담 문제 및 마약·테러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안보 우려가 불거지면서 사업은 30년 가까이 표류했다. 어렵게 착공은 했지만 예정된 완공 시점(2030년)을 준수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은 “일대일로는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응해 세력권을 확대하려는 전략인 동시에, 국내 과잉 생산된 자재와 인력을 배출하는 통로”라며 “신속하게 중국식 발전 모델을 보여주려다 보니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이 유라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 세계 각 지역을 철도·도로·항만 등으로 연결해 자국의 경제권으로 확장한다는 구상. 고대 중국과 유라시아를 연결했던 비단길(Silk Road)을 21세기에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이같이 명명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2013년 카자흐스탄과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각각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해상 실크로드(일로) 구상을 주창하면서 중국의 대외팽창정책을 상징하는 용어가 됐다. 일부 참여 국가들이 중국에 과도한 채무를 지고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등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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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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