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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한국처럼 정 넘치는…'불곰국'에 가보셨나요? [내책 톺아보기]

파이낸셜뉴스 유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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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랴코프 일리야 교수가 말하는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벨랴코프 일리야 / 틈새책방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벨랴코프 일리야 / 틈새책방


한국에서 러시아를 설명하는 일은 아주 어렵다. 문화, 세계관, 가치관, 역사, 지리, 민족, 언어, 풍습 등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처음에 방송에 나갔을 때는 내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객관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내가 겪은 러시아와 다른 러시아인들이 경험한 러시아는 다른 나라일 수 있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말하는 한국과 남해에 사는 사람이 묘사하는 한국이 다른 것과 같다. 불교 우화에 나오는 맹인모상(盲人摸象)과 마찬가지다. 내가 이야기하는 러시아는 눈을 감고 만진 코끼리를 설명하는 꼴이라는 걸 '비정상회담'을 통해 절감했다.

나는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살았고, 한 인간으로서 독립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경험과 지식을 한국에서 배웠다. 첫 직장도, 첫 연애도 한국에서 경험했고, 돈 관리나 부동산 지식도 한국식으로 공부했다. 이제 러시아에서 온 사업가나 관광객을 통역하는 일을 할 때면 그들과 내가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한국인이 된 것도 아니다. 자라온 환경, 문화적 배경은 한국인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내 정체성은 늘 러시아와 한국 사이 어디쯤에서 표류한다. 한국에서는 '러시아인' 취급을 받지만 해외에 나가면 '한국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떤 때는 러시아인의 입장에서 러시아를 설명하고, 어떤 때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러시아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 책을 쓰면서 이제는 러시아와 한국 사이의 어디쯤에 닻을 내린 느낌이 든다. 나는 한국인인가 러시아인인가. 그 해답을 조금은 찾아냈다.

나는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얻었다. 이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러시아를 다소 우호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게 된다.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를 한창 집필중이던 2022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전쟁을 일으켰다. 유럽을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은 원죄가 러시아에 있고, 푸틴이 전쟁 범죄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경제적인 배경을 떠나서 이 책의 독자들이 조금 다른 러시아를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리고자 한다. 러시아와 한국은 언젠가는 다시 협력하고 교류해야 할 나라다. 미리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다리를 조금씩 놓아 보려고 한다. 러시아와 한국이 우호 관계를 맺으려면 많은 걸림돌이 있겠지만, 한국인과 러시아인이 친구가 되기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는 러시아와 관련된 일을 하거나 어쩌다 러시아와 인연이 생긴 한국인이 많다. 러시아로 유학을 갔다가 러시아에 빠져서 사업을 시작한 친구도 있고, 일 때문에 한 번 갔다가 아직까지 러시아에 눌러앉은 친구도 있다. 심지어 러시아가 마음에 들어서 아예 러시아로 귀화한 친구도 있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바로 귀동냥으로 알던 러시아와 실제로 겪어 본 러시아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독특한 문화, 처음에는 불곰 같이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고 나면 정이 넘치는 러시아인들, 광활한 대지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 경관… 러시아는 한국인에게도 매력이 있는 나라다. 비록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가 러시아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와 러시아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외국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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