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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부디 새해에는 '나'에게 자비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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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부디 새해에는 '나'에게 자비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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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엄격한 완벽주의자가
많은 것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모두 포기
'좀 못하면 어때' 자신을 다독이고
격려할 수 있는 자기자비를 가져야
다시 일어나 성공에 도달할 수 있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DGIST 석좌교수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DGIST 석좌교수

새해다. 마음을 새로이 한다. 계획대로 살지 못한 한 해의 후회로 얼룩진 연말 우울감에서 벗어나 희망찬 새해를 다짐한다. 목표를 세우며 새로워질 나에 대한 기대감에 살짝 들뜨기도 한다.

새로 쌓일 열두달이 지나 다시 연말이 돌아오면 또 후회할지언정, 새해만큼은 막연한 기대로 충만해진다. '거짓 희망 증후군(False Hope Syndrome)'에 해당하는 비현실적인 기대감 때문이다. 자신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었다가 결국 실패하고, 그럼에도 다시 무리한 계획을 세우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증후군이다. 계획을 세우는 순간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되고, '변화하겠다고 결심한 나'의 모습에 일시적인 위안을 얻는다.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불만스러울 때,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성공한 자신을 그려보면서 생기는 가짜 만족감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한다.

새로운 계획에 들떠 생기와 에너지 넘치는 새해를 맞이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거짓 희망에 속았기에 실패를 거듭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초반에 거창했던 다짐은 며칠 만에 속절없이 주저앉게 된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거대한 목표 말고 성취할 수 있을 만큼의 낮은 목표를 세우라고들 조언한다. 차근히 단계적으로 접근해서 성취의 만족감을 가지라고들 한다.

그런데 아무리 작은 목표를 세워도 금세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완벽주의자들이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대로 다 포기해버리는 '나 몰라 효과(what the hell effect)'가 완벽주의자들에게 더 심하다. 다이어트 결심 후 간식은 절대 입에 대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쿠키 하나를 먹게 되었다 치자. 이 단 한 개의 쿠키는 완벽주의자에게 "에라 모르겠다, 그냥 먹어버리자, 다이어트는 포기하자"는 '마음 붕괴' 현상의 트리거가 된다.

첫 시험을 망치고 나면 오늘은 다 망했다고 포기해버린다. 둘째 시험부터라도 제대로 하면 될 텐데, 이미 망친 시험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사소한 실수를 완전한 실패로 인식하여 변화를 위한 노력을 중단시킨다. 완벽하지 않으면 망가뜨려버리는 성향, 완벽만 추구하는 성향을 지닌 자들의 특징이다. 이런 완벽성은 조금이나마 해낼 수 있는 것도 아예 포기하게 만든다.

이러니 완벽을 추구해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 많은 것을 성취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이다. 자신에게 대충인 사람, 즉 관대한 사람의 목표 달성 확률이 훨씬 높다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이해된다. "좀 못하면 어때, 지켜지지 않으면 어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느 순간, 성공에 도달해 있다. 완벽함보다 스스로에 대한 관대함, '자기자비'가 성공으로 이끄는 핵심 키워드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가 제안한 '자기자비(Self-Compassion)'는 단순히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실패한 순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행위는 뇌의 위협 시스템을 활성화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시킨다.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뇌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다른 보상, 게으름이나 포기를 선택하게 한다. 그러나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오늘 못한 것을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이해하는 자기자비는 뇌를 안정시켜준다. 그래서 다시 몰두하게 하고, 일어설 수 있게 만든다.

자기자비는 자기 연민이나 동정과는 다르다. 자기연민은 나만 특별히 더 불행하다는 생각에 함몰되어 고통을 증폭시키고, 스스로 피해자라는 생각으로 고립과 단절을 초래한다. 그러나 자기자비는 고통과 실패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경험이라고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다. 실패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다독거리면서 안아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다고 새해 계획이나 결심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계획을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약해서 실패하는 게 아니라 자기자비의 부족일 수 있음을 자각하자. 달성해야 할 목표를 세우고 더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 첫 단추라면, 설사 이루지 못하더라도 시도한 자신을 다독이고 격려할 수 있는 자기자비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계획이란 게 원래 다 지켜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자신을 이해시켜야 한다.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이라던 영화 기생충의 대사와 달리 "실현되지 않는 것이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에게 무한히 관대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DGIST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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