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측근과만 논의해 결론…60∼70%대 지지율에 '권력기반 강화' 노림수
"고립주의가 여당 일체감 흔들어" 분석도…자민 단독 과반이 승패 기준 관측
"고립주의가 여당 일체감 흔들어" 분석도…자민 단독 과반이 승패 기준 관측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연초 전격적으로 중의원(하원) 조기 해산 방침을 결정하면서 정치권이 당혹감에 휩싸였다.
15일 일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조기 해산을 집권 자민당 간부에게 전하지 않은 채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 등 소수 측근과만 조용히 논의해 정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17일 임시국회 종료 당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중의원 조기 해산과 관련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며 부정적 태도를 나타냈으나, 연말연시 휴가를 거치면서 생각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중의원 해산 직후 치러질 총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할 경우 자민당은 분열하고, 당내 비주류 세력은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비판 수위를 단번에 높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 해산 결정이 '승부수', '도박'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기념품 |
◇ 여러모로 이례적 해산 판단…'킹 메이커'·여당 간부도 안 알려
다카이치 총리는 오는 23일 소집될 예정인 정기국회 첫날 중의원을 해산하고 내달 8일 총선을 치를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해산은 시기, 중의원 의원 임기 등을 고려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정부 회계연도는 4월에 시작하며, 새 회계연도 예산안은 1월 시작되는 정기국회에서 심의를 거쳐 3월 하순께 통과된다. 1월에 중의원을 해산하면 한 달 정도는 예산안을 심의할 수 없어 3월 이전 가결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예산안 심의가 4월 이후까지 이어지면 사회보장비, 공무원 인건비 등 최소한의 지출을 위해 잠정예산을 편성하게 된다. 일본에서 잠정예산이 편성된 것은 2015년이 마지막이었다.
요미우리신문은 1월 해산은 1947년 시행된 현행 헌법 체제에서 1955년과 1990년 등 2회에 불과하다며 "정기국회가 1월에 소집되기 시작한 1992년 이후는 사례가 없다"고 전했다.
경제 정책 추진을 강조했던 다카이치 총리는 총선으로 국정이 정체되는 것을 우려해 투표일을 최대한 앞당겨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투표일은 내달 8일이 유력하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국회의원 선거를 일요일에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해산부터 투표일 사이 기간은 16일로 태평양전쟁 이후 가장 짧은 '초단기 결전'이 확정된다.
일본에서 중의원 의원 임기는 4년이며, 해산은 총리 전권 사항이다. 직전 총선은 2024년 10월 하순에 치러졌다. 아직 의원들의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도쿄신문은 다카이치 총리가 이달 23일 중의원을 해산할 경우 의원 재임 일수는 454일로 현행 헌법 체제에서는 역대 세 번째로 짧다고 짚었다.
이보다 중의원 의원 재임 일수가 짧았던 1953년과 1980년에는 내각 불신임안이 통과돼 해산이 불가피했다. 총리가 정치적 판단에 따라 해산한 경우만 따지면 이번이 의원 재임 일수가 가장 짧은 사례로 역사에 남게 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정치판을 뒤흔들 중의원 해산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작년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킹 메이커' 역할을 한 아소 다로 당 부총재,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이 전했다.
해산 검토 보도가 나온 이후에도 다카이치 총리는 한동안 자민당 의원들의 연락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처럼 '고독한 방식'으로 해산을 정한 이유는 아베 신조 정권처럼 당보다 총리 관저에 무게중심을 두는 정책 운용을 동경했기 때문이라고 닛케이가 분석했다.
그러나 독단적 결정에 야당이 반발하는 것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자민당의 한 간부는 닛케이에 "이제는 다카이치 총리를 지지할 수 없다"며 불신감을 나타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세제조사회장은 전날 "이 시기에 해산한다는 것에 조금 어리둥절하다"고 말했다.
산케이신문은 "다카이치 총리의 고립주의가 여당 내 일체감을 흔드는 사태가 됐다"고 해설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
◇ 높은 지지율·중일 관계 악화 등에 결단…주요 상임위원장 확보 노려
일본에서 중의원 해산은 총리가 지닌 '전가의 보도'이자 '양날의 검'으로 평가된다. 잘 사용하면 단번에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지만, 해산 직후 총선에서 패배하면 구심력이 급격히 약화할 수밖에 없다.
다카이치 총리가 중의원 해산에 나서려는 배경으로는 무엇보다도 높은 지지율이 꼽힌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끄는 내각 지지율은 출범 3개월째를 맞았음에도 60∼70%대를 기록하고 있다. 비록 자민당 지지율은 40%를 밑돌고 있으나, 내각에 대한 인기가 한창 높을 때 빨리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 낫다고 본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이번 정기국회에서 야당의 공세에 노출된 다카이치 총리가 작년 11월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처럼 논란의 소지가 있는 언급을 할 경우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도 조기 해산 결정의 이유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또 악화한 중일 관계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외교 정책으로 점수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내달 총선에서 자민당 의석수를 대폭 늘려 중의원에서 주도권을 틀어쥐겠다는 구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의원 의석수는 465석이며, 자민당 의석은 과반인 233석에 훨씬 못 미치는 195석이다. 다카이치 내각 출범 당시에는 유신회 의석을 합쳐도 절반 이하였고, 중요한 상임위원장 자리도 야당 의원이 차지한 상태였다.
자민당이 내달 총선에서 단독 과반을 확보할 경우 이러한 구도를 뒤집어 예산위원장 등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를 되찾아오고, 국회 심의도 다카이치 총리의 구상대로 할 수 있게 된다.
닛케이는 "다카이치 총리에게 중의원 해산은 도박"이라며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지 못하면 자민당 내 불만은 총리를 직격할 것"이라고 짚었다.
자민당의 한 의원은 "지금은 당내가 조용하지만, 이번 (해산 결정) 방식은 응어리가 남을 것"이라며 "지지율이 내려가면 단번에 (내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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