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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면 바보” vs “나도 모르게 표절”…출판계의 AI 딜레마

동아일보 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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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면 바보” vs “나도 모르게 표절”…출판계의 AI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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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설은 삼법인 중 제행무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야!”(정경 스님)
“맞습니다, 스님. 아주 핵심을 짚으셨습니다.”(챗GPT)

6일 출간된 책 ‘석가 웃다’(지혜의나무)는 스님이 챗GPT와 나눈 대화를 수록한 일종의 대담집. 챗GPT가 오답을 말하면 말하는 대로, 스님이 채근하면 채근하는 대로 실제 문답을 엮었다. 스님 서문과 별도로 ‘챗GPT가 쓴 서문’도 실렸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출판계에도 AI가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석가 웃다’처럼 활용을 명시한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 △기획 △집필 △번역 △교정·교열 △디자인 과정 등 여러 과정에서 조용히 쓰이고 있다.

때문에 제작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만, 표절이나 원고 유출의 위험 등 “아슬아슬한 순간도 많다”는 말이 나온다. 한 출판 관계자는 “책은 인간이 만들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AI를 쓰면서도 쓴다고 말하기엔 심리적 저항감이 있다”고 했다. AI와 기존 출판업계의 관행, 윤리가 교차하는 풍경을 살펴봤다.

● 1인 출판사 “안 쓰면 바보”

번역서를 주로 출간하는 1인 출판사 A 대표는 “업무 효율이 좋아지니 안 쓸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이전엔 외주를 맡긴 번역 원고가 들어온 뒤에도 대표가 일일이 검토하느라 출간까지 두 달 이상 걸렸다. 하지만 AI를 활용하면 한 달 이내로 줄일 수 있다. A 대표는 “외주 번역가들에게도 AI를 쓰라고 요청한다. 그래야 원고가 훨씬 깔끔하게 들어온다”고 했다.


‘AI 번역’에 대한 거부감도 옛말이다. 또 다른 출판사 편집자는 “번역가들에게 묻진 않지만 이젠 당연히 제미나이나 챗GPT를 썼을 거라 여긴다”며 “번역가는 일종의 디렉터가 돼 번역 결과를 감수하는 구조”라고 했다. 인간이 감수만 잘하면 오히려 번역의 질을 높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 ‘신개념 표절’의 등장

하지만 창작물은 사정이 다르다. 최근 문학출판사 B사는 계약서에 ‘AI 교정·교열을 허용한다’는 문구를 넣으려다 내부 반대로 보류했다. 출간 전 원고를 AI에 입력했다가 오픈 소스로 유출될 경우,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창작물이 AI 학습데이터로 흘러 들어가 알게 모르게 표절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최근 한 문학상 심사 과정 중 응모작에서 유명 작가의 베스트셀러와 서너 문단 연속 흐름이 유사한 대목을 발견했다. 그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은 창작물일 가능성을 심사위원들도 인지했다”며 “자기도 모르게 표절한 셈인데, 해당 작품은 탈락했지만 어떤 기준으로 걸러낼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표절 문제는 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C 출판사 대표는 “희귀 조류나 식물 사진은 저작권자로부터 컷당 10만~20만 원을 주고 사야 하는데, AI로 연필화로 바꾸거나 각도를 변형해 무단 사용하는 경우가 잦은 실정”이라며 “AI를 무분별하게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고 했다.

● ‘딸깍 출판’의 유혹

최근 한 출판사에서 낸 세계문학 시리즈 ‘오디세이아’ 번역본(종이책)에 ‘알빠노(내 알 바 아니다)’나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 같은 인터넷 용어가 쓰인 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번역자도 명시되지 않은 탓에, 전공책을 주로 내 온 해당 출판사가 고전 번역에 뛰어들며 AI에 과도하게 의존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왔다.

한 출판사 대표는 “저작권이 풀린 책들은 이전에도 짜깁기 번역이 많았는데, 이젠 클릭 한 번으로 ‘딸깍’ 출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일부 ‘AI 출판’이 욕을 먹는 건 번역가나 편집자 등 전문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AI에만 의지하기 때문이다. AI 자체보다 ‘검수 포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최근 신입사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만든 책과 AI가 만든 책이 경쟁하는 시대가 현실이 될 것 같다”고.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는 만큼 책임과 기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는 얘기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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