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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시각] 韓 금융, 日 메가뱅크서 여전히 배울점 많다

조선비즈 송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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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시각] 韓 금융, 日 메가뱅크서 여전히 배울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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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 금융 그룹인 일본 미쓰비시UFJ금융그룹(MUFJ)은 지난달 최고경영자(CEO)를 연쇄 이동하는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그룹 2인자였던 가메자와 히로노리 사장은 회장으로 내정하고, 미케 가네쓰구 현 회장은 특별고문으로 이동한다. 한자와 준이치 미쓰비시UFJ은행장은 히로노리 사장의 자리를 이어 그룹 2인자가 된다. 은행장은 오사와 마사카즈 전무가 승진한다.

히로노리 회장 내정자와 준이치 행장, 마사카즈 전무는 모두 그룹 요직을 두루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로 꼽힌다. MUFJ의 CEO는 오랜 기간 경영 능력을 평가받으며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간다. 철저한 경영 승계 시스템으로 ‘육성된 CEO’들이다. MUFJ는 CEO의 별도 임기를 두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만 70세 이전에 퇴임한다. 이번 인사도 69세인 가네쓰구 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나면서 그룹 CEO가 연쇄 이동한 것이다.

국내 좌파의 관점으로 보면 MUFJ도 ‘부패한 이너서클’이다. 철저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은 소수의 인사가 CEO를 나눠 먹는 구조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 영국의 더 뱅커(The Banker)지는 매년 세계 1000대 은행을 선정하는데, 중국계를 제외하면 10위권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는 아시아 은행은 MUFJ뿐이다. KB국민은행(62위), 신한은행(67위) 등 국내 주요 은행은 50위권(2025년 7월 발표 기준) 밖이다.

MUFJ는 글로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문에서 손꼽히는 강자다. 2023년 기준 MUFJ가 건설이나 발전소 등 글로벌 대형 프로젝트에서 금융을 주선한 금액은 95억9700만달러(약 14조1300억원)로 글로벌 은행 중 압도적 1위다. 반면 한국 은행은 글로벌 PF 부문 20위권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MUFJ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그만큼 이 회사의 경영진을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시스템은 MUFJ가 글로벌 금융 그룹으로 성장한 발판이기도 하다. 금융 당국이 이를 문제 삼아 인사에 개입했다는 현지 보도는 보지 못했다. 이너서클이 꼭 부패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부패한 이너서클’ 발언을 시작으로 금융 당국이 금융지주사 지배 구조 개편을 벼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중 국내 8대 은행 지주를 대상으로 지배 구조 특별 점검에 나서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지배 구조 개편안도 만들 계획이다. 국민연금을 동원해 정부 측 인사를 이사회에 넣겠다는 구상도 나온다.


금융지주사 CEO의 임기를 제한하거나 사외이사의 견제 기능을 강화해 지배 구조를 선진화한다는 것은 단편적인 발상이다. 철저한 평가 시스템을 통해 CEO가 될 인재를 육성하고 경영을 잘하면 주주와 이사회의 선택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될 일이다. 금융 당국은 문제가 있는 CEO를 시장에서 퇴출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CEO의 임기를 제한하면 장기보다는 단기 성과에 급급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농협중앙회장직은 단임제인데, 비리에 연루돼 법의 심판을 받는 사람이 많다. 정권을 등에 업은 국민연금 추천 사외이사가 회장과 반목하면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한국 경제의 대도약을 이끈 원동력은 시장경제 시스템이다. 과도한 관치는 시장경제의 적이다. 금융 당국은 MUFJ처럼 국내 금융지주사에 선진화된 승계 시스템이 정착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집권 세력이나 부패한 소수가 이 시스템에 개입할 때 금융 당국이 나서 막아내야 한다. 이것이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한 ‘착한 관치’다. 지금 정부의 지배 구조 개편 작업은 소수의 정치 이너서클이 금융지주사 인사에 개입하려는 야욕처럼 보인다.

송기영 기자(rcky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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