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근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는 무엇을 먹고 연명했으며 평상시에는 어떤 것들을 먹었을까.
1454년 완성된 세종실록과 부록인 세종실록지리지를 통해 알아본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 26년(1444) 4월 24일 이런 일이 있었다.
황해도에 흉년들어 백성들이 흙을 파먹는다고 하기에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는데 이날 돌아와서 임금에게 아뢰기를, "해주에서 흙을 파먹는 자가 무릇 30여 명이었으며 장연현에서는 두 사람이 흙을 파먹다가 흙이 무너져 깔려 죽었다 하옵니다."라고 했다.
흉년에 의한 기근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인지 느끼게 한다.
당시 기근은 충청도에서도 심각했다.
해서 충청도 관찰사 김조(金銚)는 같은 날 세종을 알현하고 충청도 백성들이 3~4일만 더 굶으면 부황(오래 굶주려 살가죽이 들뜨며 붓고 누렇게 변하는 병)에 걸릴 지경이라며 종자용 잡곡 15만 석과 구황용 양곡 25만 석을 급히 내려주실 것을 간청했다.
이에 세종은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종자용 잡곡 7만 석과 구황용 양곡(쌀·콩·잡곡) 20만 석을 즉시 충청도에 내려 줄 것을 호조에 명했다.
충청도 관찰사가 요청한 양에는 크게 못 미쳤지만, 우선 당장 백성들이 먹고 굶주림을 면할 양곡과 함께 씨 뿌려 농사지을 종자까지 배려한 결정이었다.
비록 기근이라는 긴급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당시 백성들의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쌀과 콩, 잡곡이 백성들에게 긴급 지원된 양곡이었다는 점에서 이들 곡물이 그 무렵 백성들의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다만 긴급 지원된 각 곡물의 비율과 잡곡의 종류를 알 수 없어 아쉽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전기의 주식류는 밥·죽·국수·수제비 등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신분과 지역, 경제 형편에 따라 각각의 주식류를 조리하는 곡물의 종류와 양이 달랐다.
밥의 경우 흰쌀밥은 왕족이나 양반 같은 부유층만 먹을 수 있었고 대다수 백성은 보리·밀·수수·기장·조·메밀·율무·콩·팥 등이 섞인 밥을 먹었다.
심지어 오늘날 잡초로 인식하는 피(볏과의 한해살이풀)를 농사지어 핍쌀(피 씨앗을 찧은 쌀)로 피밥을 지어 먹기도 했다.
온갖 잡곡이 일반 백성들의 주식이었던 셈이다.
잡곡으로 지은 밥이나마 배불리 먹을 형편이 못 되면 양을 늘리기 위해 나물류 등 다른 식재료를 첨가해 밥을 짓든지 죽을 끓여 먹었고 국수나 수제비로도 끼니를 때웠다.
# 충청도의 경작 적합 작물 '토의(土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국 각지의 토의 목록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다.
토의는 '경작하기에 적합한 작물'을 일컫는다.
해당 지역의 토질과 기후에 알맞아 잘 자라는 작물이 곧 토의이다.
다시 말해 해당 지역에 특화된 작물 즉, 지역 특산작물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본디부터 그 지역에서 나는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는 것을 토공물(土貢物)이라고 한 데 비해 지역 특유의 토의를 공납할 경우엔 토의 공물이라 불렀다.
토의는 단순한 작물이 아니며 조선 시대 지역별 농업 및 재정 정책의 핵심 개념이었다.
토의 가운데 특히 곡물류는 당시 지역별로 무엇을 많이 재배하고 먹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충청도에서 토의로 기록된 곡물류는 쌀·보리·밀·피·기장·조·율무·메밀·콩·팥·녹두·참깨 등 12종 정도로 파악됐다.
주목할 건 수수가 충청도의 토의 곡물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경기도 강화도호부 등 전국 23개 부·군·현의 토의로만 이름이 올라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에는 수수가 널리 재배되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충청도의 토의 곡물 12종 가운데 가장 많은 목·군·현에서 경작된 것은 조와 콩으로 각각 52개 지역으로 나타났다.
당시 충청도의 목·군·현 수가 모두 55개였음을 고려하면 무려 95%의 경작률이다.
3개 지역만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지역에서 조와 콩 농사를 지었다는 얘기다.
그다음으로는 기장이 50개 목·군·현의 토의 목록에 올라 91%의 경작률을 보였고, 벼는 48개 지역에서 재배해 87.3%의 경작률을, 보리는 42개 지역에서 재배해 76.4%의 경작률을 나타냈다.
팥은 28개 지역(충청도 내 경작률 51%), 메밀은 25개 지역(〃 45.5%)에서 농사지었다.
그다음은 피인데 충청도 내 13개 지역(청풍군·제천현·직산현·평택현·회인현·임천군·정산현·홍산현·석성현·홍주목·서산군·청양현·대흥현)에서 피 농사를 지었다.
그 외에 참깨는 10개 지역, 녹두는 3개 지역, 밀과 율무는 각각 2개 지역의 토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 충청도 토의 목록에 올랐던 과실류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토의 가운데에는 과실류도 포함돼 있다.
견과류인 잣과 가래(추자)를 비롯해 배·밤·감·대추·모과 등 7종의 과실류가 충청도의 토의 목록에 올라 있다.
그중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과실류는 배이다.
청주목·청안현·황간현·회인현·보은현·청산현·온수현·비인현·정산현·면천군·대흥현 등 11개 목·군·현의 경작 적합 작물로 배나무가 기록돼 있다.
600년 전쯤엔 배가 '충청도의 대표 과일'이었음을 시사한다.
또 대추는 충주목·영춘현·목천현의 토의 목록에 올라 있는데 특별히 '영춘현의 대추가 가장 좋다'고 기록돼 있어 주목된다.
밤은 공주목·은진현·홍주목·보령현의 토의로, 감은 비인현·청양현의 토의로, 가래는 단양군·청풍군·연풍현·천안군의 토의로, 잣은 단양군의 토의로 각각 기록돼 있다.
이들 중 공주목의 토의인 밤은 약 600년이 지난 지금도 공주시의 대표 특산물로 인정받고 있어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 충청도의 토지세 납부 곡물류 세종실록지리지의 전국 각 도 총론에는 궐부(厥賦) 항목이 있는데 이는 해당 도의 전세(田稅)를 총괄해 기록한 것이다.
전세는 토지에서 생산된 곡물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토지세를 의미한다.
토지의 면적에 따라 세액이 정해졌으며 주로 쌀, 보리 등 생산된 곡물을 납부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조선 전기 충청도에서 토지세로 바쳐진 곡물류는 8종 정도이다.
쌀의 경우 경미(멥쌀)·백미·세경미·상경미·점경미·점백미·조미(현미) 등 일곱 가지가 기록돼 있어 여러 종류의 쌀이 토지세로 부과됐음을 알 수 있다.
또 핍쌀·콩·팥·녹두·찰보리·메밀·참깨가 토지세로 바쳐졌다.
아울러 참깨와 들깨를 짜서 만든 참기름과 들기름도 부과됐다.
# 15~16세기 문헌에 기록된 밥 종류 1400~1500년대 문헌에 소개된 밥 종류는 17가지에 이른다.
먼저 전순의는 산가요록(1459년)에 메밀밥을 소개한 데 이어 식료찬요(1460년)에서는 밀밥·청량미밥(차조의 하나인 청량미로 지은 밥)·조밥·멥쌀밥·피밥(핍쌀밥)·율무밥을 소개했다.
성현의 용재총화(1525년)에는 조밥·백미반·현미밥·제밥(고두밥)·빙침반(밥에 콩가루와 얼음을 넣고 비빈 밥)이, 김유와 그의 손자 김령이 지은 수운잡방(1530년대)에는 황탕(노란색 국밥)이, 유희춘의 미암일기(1567~1577년)에는 송엽골동반(솔잎을 삶아 밥에 넣고 비빈 밥)·두부반(쌀에 두부를 넣어 지은 밥)이, 오희문의 쇄미록(1591~1601)에는 보리밥·수반(물에 밥을 만 것)·김치국밥이 기록돼 있다.
조선 전기 충청도는 '조·콩의 고장'이었다55개 고을 중 52곳서 조·콩 농사대표과일 '배'… 11개 목·군·현 적합피 농사지어 '피밥' 만들어 먹기도'영춘현의 대추 가장 좋다'고 기록공주 특산 밤, 조선 시대에도 유명 조선시대,충청도,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