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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과학수사] “죽음 밝혀 산 자 지킨다”… 30분 만에 신원 찾아내는 국과수

조선비즈 김양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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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과학수사] “죽음 밝혀 산 자 지킨다”… 30분 만에 신원 찾아내는 국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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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시는 사건을 해결하는 첫 단추입니다. 돌아가신 분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망 원인을 정확히 밝혀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지난 8일 강원도 원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에서 만난 박소형 국과수 법의관은 검시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말 없는 사체를 상대로 죽음의 이유를 밝히는 일. 그는 이를 단순히 ‘사인을 규명하는 작업’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검시는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박소형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법의관이 검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박소형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법의관이 검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2009년 국과수에 임용된 박 법의관은 17년째 검시 업무를 맡고 있다. 검시는 사체 손상 정도에 따라 외표만 확인하는 검안과 해부를 동반하는 부검으로 나뉜다. 국과수 법의관 1명이 1년에 담당하는 검시 건수는 200~300건가량. 주말을 제외하면 하루 한 건 이상을 처리하는 셈이다.

검시 대상은 흔히 ‘변사’로 분류되는 사건들이다. 박 법의관은 “변사는 범죄와 직접 연관된 사망만을 뜻하지 않는다”며 “사인을 알 수 없거나, 범죄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은 모든 죽음이 조사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질병, 사고, 고독사, 감염병 사망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러한 변사 사건의 출발점은 언제나 신원 확인이다. 박 법의관은 이 지점에서 한국의 시스템이 세계적으로도 매우 특이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신원 확인 문제가 거의 없는 나라입니다. 빠른 신원 확인 시스템 덕분에 해외에서는 한국이 마법을 부른다는 말까지 합니다. 외국은 신원 미상자 사고가 굉장히 많거든요.



한국은 주민등록 제도를 통해 만 17세 이상 모든 국민의 열 손가락 지문을 수집·보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변사자의 지문만 확보되면 신원 확인은 통상 30분 이내에 끝난다. 그는 “지문을 통한 신속한 신원 확인 시스템은 해외 수사기관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이라며 “변사자가 가족에게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박 법의관은 제11회 대한민국 공무원상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검시를 ‘공로’나 ‘성과’로 설명하는 데에는 조심스러워했다. 검시는 개인의 능력으로 완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사건 하나를 해결하는 데에는 법의관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경찰, 행정, 사법 시스템이 함께 움직이는데, 검시는 개인의 검진이 아니라 국가가 작동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박소형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법의관이 변사 사건 정보를 살펴 보고 있다. /윤희훈 기자

박소형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법의관이 변사 사건 정보를 살펴 보고 있다. /윤희훈 기자



검시는 흔히 ‘죽음을 밝히는 일’로 인식되지만, 박 법의관은 그 대상이 반드시 사망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상황을 예로 들었다.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명확한 사인을 규명해야 주변 사람들도 불안을 덜 수 있습니다.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왜 죽었는지를 아는 것은 곧 나 자신의 안전과도 연결됩니다.


이런 관점은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검시 제도의 핵심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사망 원인을 정확히 밝혀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과수 법의관은 의과대학 4년, 인턴 1년, 전공의 4년 등 총 11년의 수련을 거쳐야 하는 전문의다. 병원을 개업하거나 민간 병원에 취직할 수도 있지만, 법의관의 처우는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의사의 평균 연봉은 3억원을 웃돌지만, 법의관의 초봉은 야간 수당 등을 포함해 7000만~8000만원 수준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중도에 그만두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박 법의관은 이 길을 선택했다. 그는 “전공의 시절 국과수 파견 근무를 하며 세부 훈련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흥미를 느꼈다”라며 “일부 장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신을 통해 질병과 사고를 이해한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김양혁 기자(presen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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