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회 낙인 약해져 밸류 낮추고 완주에 무게
스토리보다 가격·유통물량 본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철회 이후 재도전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이다. /챗GPT 생성 이미지 |
[더팩트|윤정원 기자]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상장 일정이 한 번에 끝나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 수요예측까지 갔다가 멈춘 뒤 공모가와 구조를 고쳐 다시 나서는 흐름이 굳어지고 있다.
◆ 케이뱅크 "세 번째 도전"…공모가 낮추며 완주 의지 다녀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지난 13일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케이뱅크는 앞서 두 차례 상장에 나섰다가 일정을 접은 바 있다. 2022년 첫 IPO를 추진했지만 시장 여건 등을 이유로 철회했고, 2024년에도 상장을 재추진해 수요예측까지 진행했으나 이내 공모를 중단했다. 이번 신고서 제출은 사실상 세 번째 도전이다.
케이뱅크의 공모 주식 수는 6000만주다. 공모 희망가 범위는 8300~9500원으로 제시했다. 공모금액은 4980억~5700억원으로 추산된다. 상장 후 시가총액은 3조3673억~3조8541억원이다. 수요예측은 2월 4~10일, 일반청약은 2월 20·23일 진행된다. 상장 예정일은 3월 5일이다.
케이뱅크가 던진 메시지는 단순히 '세 번째'라는 숫자가 아니다. 이번 공모희망가는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준 1.38~1.56배 수준이다. 두 번째 유가증권시장 상장 도전 당시 공모 희망가 범위(9500~1만2000원)와 비교하면 몸값을 약 21% 낮췄다.
시장에선 케이뱅크가 IPO 흥행을 최대로 끌어올리기보다 상장 완주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무게를 옮겼다고 본다. 더욱이 케이뱅크가 재무적투자자(FI)와 약속한 상장 기한은 7월까지로 알려졌다. 이번 IPO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이야기다.
◆ 대어도 멈췄다…DN솔루션즈·롯데글로벌로지스 철회 전례
이 같은 흐름은 케이뱅크만의 사례로 보기 어렵다. 2025년 봄에는 조(兆) 단위 대어로 꼽혔던 기업들이 수요예측 이후 잇따라 브레이크를 밟았다. DN솔루션즈는 2025년 4월 30일 철회신고서를 제출하며 상장 절차를 멈췄다. 기관 수요예측을 마친 뒤 최종 공모가를 확정·발표하는 날 철회 공시가 나와 더욱 이목을 끌었다.
당시 DN솔루션즈는 공시를 통해 "현재와 같이 대내외 금융 시장 환경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당사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렵다. 제반 여건을 고려해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롯데글로벌로지스도 비슷한 흐름을 탔다. 회사는 2025년 3월 24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공모 절차에 착수했지만, 5월 2일 철회신고서를 내고 일정을 접었다. 롯데글로벌로지스 역시 대내외 금융시장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가치를 적정하게 평가받기 어렵다는 점을 철회 배경으로 들었다.
◆ 철회 사유도 제각각…소형 딜·절차 이슈까지
재도전은 대어급만의 언어가 아니다. 비교적 소형 딜에서도 한 번 접고 다시 내는 방식이 반복된다. 미트박스글로벌은 2024년 말~2025년 초 몸값을 낮춘 재도전 사례로 자주 언급됐다. 미트박스글로벌은 IPO 철회 이후 단기간에 재도전하며 공모 구조와 산정 근거를 손질했고, 국내 증시 변동성을 고려해 희망 공모가 범위를 이전 대비 약 17% 낮췄다.
철회 배경이 가격에만 있지는 않다. 2025년 8월 S2W는 전자증권 전환 절차 미비로 상장을 철회했다. S2W는 8월 6일 금융당국에 철회신고서를 제출했고, 회사는 전자증권 전환(한국예탁결제원) 절차가 완료되지 않아 일정을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8월 중순께 증권신고서를 재제출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제시됐다.
서울보증보험도 재수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로 묶인다. 2023년 10월 공모를 철회한 뒤 약 1년 3개월 만인 2025년 1월 24일 증권신고서 제출을 추진하며 재도전했다. 공적자금 회수라는 과제가 걸려 있는 만큼, 시장 환경과 가격 눈높이를 다시 맞추는 과정이 더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 왜 다시 나오나…"수요예측 기준점 바뀌었다"
IPO 2라운드 흐름의 배경에는 수요예측 시장의 기준점 변화가 깔려 있다. 상장 추진 여부를 가르는 잣대가 성장 스토리의 설득력에서 가격과 물량 구조의 납득 가능성으로 이동했다는 관측이다. 밴드를 높게 잡아 흥행을 노리기보다, 공모가를 내리고 유통 가능 물량과 조건을 다듬어 상장 가능성을 확보하는 쪽으로 발행사 전략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케이뱅크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회사는 공모자금을 소상공인(SME) 금융 확대와 기술 경쟁력 강화, 플랫폼 기반 투자 등에 쓰겠다고 밝혔지만, 시장이 먼저 보는 것은 그 계획이 아니라 이번 공모의 가격과 구조다. 회사는 2023년 128억원, 2024년 1281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2025년 3분기까지 1034억원의 순이익을 냈다고 제시했다. 결국 실적과 성장 계획은 보조 근거가 되고, 수요예측에서 투자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레벨로 정렬되는지가 1차 관문이 되는 셈이다.
IB 업계에선 이제 철회 이력 자체의 낙인 효과는 약해졌다고 본다. 다만 그만큼 재도전 기업에 대한 잣대가 더 구체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IPO 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철회 자체가 리스크로 읽혔지만 지금은 왜 멈췄고 무엇을 바꿨는지가 핵심"이라며 "기관은 재도전이라는 단어보다 가격, 유통 가능 물량, 보호예수 등 조건을 먼저 본다"고 말했다.
garde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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