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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보던 회사 로비가 낯선 공간으로…90년생 작가의 발칙한 상상

헤럴드경제 김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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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보던 회사 로비가 낯선 공간으로…90년생 작가의 발칙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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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이수 올해 첫 기획전 ‘VHS’
젊은 작가 고대영·최선아·홍애린 소개
시각성 벗어나 이미지·소리로 균열 만들어
최선아 ‘진지바’. [사진=이의록]

최선아 ‘진지바’. [사진=이의록]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회사 로비의 거대한 유리 벽을 정체 모를 하얀 물질이 뒤덮고 있다. 거칠고 불규칙한 표면은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빈 틈새 사이로 비치는 빛과 외경은 시간에 따라 다른 장면을 연출하면서 이곳이 회사 로비인지, 아니면 다른 차원의 공간인지 혼란스럽게 한다.

이수그룹의 문화예술 공간 스페이스이수는 오는 3월 20일까지 신진 작가 기획전 ‘VHS(Very High Signals)’를 개최한다. 올해부터 신진 작가를 지원하고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다층적으로 조망하고자 스페이스이수가 선보이는 첫 전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세 작가 고대영(34), 최선아(28), 홍애린(35) 등은 모두 1990년대생으로, 국내 미술계에서 단체전의 형태로 작품을 소개한 적이 거의 없는 신진 작가들이다.

최수영 스페이스이수 대표는 13일 서울 서초구 스페이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20년 개관한 뒤 벌써 6년이 됐다”면서 “그동안은 주로 중견 작가들의 전시를 해 왔는데, 올해부터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늘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올해 첫 전시도 신진 작가들의 기획전으로 준비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전시는 스페이스이수가 회사 로비 공간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작품들은 희미하게 들리는 고주파처럼 전시 공간 안에서 일종의 신호로 기능하며 사회적 약속에 대한 예측과 기대에 작은 균열을 만든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전효경 큐레이터는 “회사 로비 공간은 회사원들이 많이 다니는 곳인데, 관습에서 벗어나 다르게 인식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며 “감각적으로 다르게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미술의 시각성의 권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작가들은 루틴, 시뮬레이션, 힘의 잔류와 증폭 등의 과정을 거쳐 물질이 입은 이미지와 소리의 형태로 작품을 제시한다.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작품은 최선아의 ‘진지바’(2026)다. 소조 재료인 스컬피로 만든 얇은 막을 14m에 달하는 로비 유리 벽에 덮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자국을 내서 만든 작품이다.

조각적 특성을 가진 작업이지만 햇빛을 재료 삼아 물질의 밀도를 세밀하게 조절하고, 프레임 안의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하나의 회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작가가 나무로 만든 작품 ‘슬리드(Slid)’(2026)는 손가락이 아닌 칼로 조각을 내고 색면을 얹는다. 필요한 말만 조심스럽게 모아 날카롭고 효율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고대영의 ‘헤일로(halo)’(2026)는 자동차 경주 F1의 차량 조종석 앞면에 붙은 안전장치에서 착안했다. 신체와 연관된 속도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작가는 3D 모델링을 통해 투명 레진 소재로 헤일로를 재현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온 헤일로는 차의 다른 부품 없이 혼자 살아남아 있지만, 제동을 걸 수 있는 실제적 기능이 소거되고 형태만 갖고 있다.

작가의 영상 작업 ‘파피용(Le Papillon)’(2025)은 과거에 찍어 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인공지능(AI) 툴을 통해 80~100배로 확대한 뒤, 부풀어진 픽셀을 AI를 사용해 촘촘하게 채웠다. 인공적으로 채워진 픽셀과 높아진 해상도는 이미지의 질감을 낯설게 만든다. 이러한 작업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아주 가까이서 본 주변인의 모습을 되새김질하고, 내밀한 여러 기억 조각을 다른 세계에서 일종의 허구적 이미지로서 재현하는 듯하다.

작가는 주변인에게 영상의 형태로 서신을 보내고, 소리 형식으로 회신을 요청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민휘와 최태현의 사운드는 오는 17일 공연으로 소개되고, 공연에서 녹음한 소리를 전시 기간 영상과 함께 틀 예정이다. 이는 과거 무성영화 상영 시절 영화 화면 앞에서 라이브로 화면에 맞도록 음악을 연주하던 형태를 전용한 것이다.


홍애린의 ‘브랫(Brat)’(2026)은 작가가 어린 시절 자주 하던 컴퓨터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2’를 전시장에 소환한다. 75인치 모니터에 3D(차원)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작품은 게임의 소녀 캐릭터가 사는 빈방을 묘사한다. 로비 대기 공간에 설치된 작품은 작품 밖의 소파, 꽃병과 연결되며 마치 인테리어 디자인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의 또 다른 작업 ‘뮤직 사이렌(Music Siren)’(2026)은 1950년 야마하에서 만든 제품 이름에서 제목을 따왔다. 이 제품은 하나의 모터로 여러 사이렌 유닛을 구동해 하모니를 만든다. 당시 사이렌 소리는 종전 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야마하 사장은 전쟁의 기억을 다른 것으로 전환하고자 이 제품을 만들었다.

홍애린은 3㎝ 남짓한 크기의 장난감 나비 모터가 움직이며 구조물을 건드리는 작은 소리를 커다란 피아노 소리로 증폭시켜 공간을 울리도록 만들었다. 소리는 별안간 경고음을 듣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전 큐레이터는 “우리는 수많은 ‘볼 만한 것’ 사이에서 살고 있다. 어느 순간 작동시켜야 할 감각을 선택적으로 작동시키지 않거나, 때로 어떤 감각에 신경질적으로 촉각을 곤두세운다”며 “이번 전시는 ‘응시할 곳 없음’의 상태를 만들어 시각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신체 여러 감각의 가동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가능한지 질문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