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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기의 시사펀치> 방중·방일 외교, ‘손자병법’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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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기의 시사펀치> 방중·방일 외교, ‘손자병법’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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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이재명 대통령의 1월 외교를 두고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중국과 일본이 서로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왜 굳이 두 나라를 모두 방문했느냐’였다. 나아가 ‘어떻게 한쪽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쪽을 만날 수 있었는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외교 수사나 개인적 친화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답은 병법에 있는데 바로 <손자병법>이다.

<손자병법>은 전쟁의 기술서로 알려졌지만, 그 본질은 ‘충돌을 관리하는’ 책이다. 손자는 싸움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싸움을 피하는 구조, 갈등이 폭발하지 않도록 배치하는 기술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최근 출간된 <손자병법>의 저자 박병영은 병법이란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이 아니라, 불필요한 오해와 오판을 막는 설계라고 설명한다.

이번 외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읽힌다.

중국과 일본은 구조적으로 불편한 관계다. 역사와 영토 문제,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두 나라는 언제든 긴장 상태로 돌아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국가의 지도자가 양국을 잇따라 방문하는 것은 자칫하면 ‘선택’이나 ‘편 가르기’로 오해받기 쉽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1월 외교는 그런 오해를 피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손자병법>의 원칙을 따른 결과다.


손자는 “불가승자, 수야(不可勝者 守也)”라고 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는 공격하지 말고 지키라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중재자나 조정자의 위치에 서지도 않았다. 대신 한국이 그 갈등의 당사자가 되지 않도록 배치했다.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병법이었다.

이 대통령의 방중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진행됐다. 일정의 중심은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이었다. 이 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일본을 거론하지 않았다. 일본을 배제하지도, 일본을 끌어들이지도 않았다. 대신 “2026년을 한중 관계 전면 복원의 원년으로 만들자”는 메시지를 통해 관계의 방향을 구조적으로 제시했다.

시 주석 역시 ‘한중 새 시대’의 기초를 다졌다고 화답했다.


<손자병법>의 ‘허실(虛實)’ 개념은 이 지점에서 분명히 작동했다. 안보·진영 문제처럼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의제는 전면에 두지 않고, 경제·산업·공급망이라는 중국이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 의제를 중심에 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중단됐던 한중 경제 협의 채널 복원, 공급망 안정화 논의 재개, 통상 분쟁 관리에 대한 상설 소통 필요성이 공식·비공식적으로 오갔다. 성과는 선언이 아니라 구조였다.

방중 일정의 폭 역시 의미심장했다. 이 대통령은 시 주석뿐 아니라 국회의장 격인 자오러지 전인대 상무위원장, 중국의 ‘경제 사령탑’인 리창 국무원 총리를 연이어 만났다. 상하이에서는 천지닝 당서기와의 만찬, 한중 벤처 스타트업 서밋 참석,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방문을 소화했다.


이는 한중 관계를 정상 간 이벤트가 아니라 정치·경제·민간으로 분산된 다층 구조로 복원하려는 의도였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신뢰 회복을 전면에 놨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혐중·혐한 정서가 한중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점에 양국 지도자의 인식이 일치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북한 문제와 관련해 대화 재개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고, 서해 구조물 문제와 해상 경계 획정에 대해서도 실무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대립을 봉합하지 않고, 관리의 틀로 옮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일본을 자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손자는 “군형상수, 적형상동(軍形常數 敵形常動)”이라고 했다. 나의 형은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상대의 형만 변하게 하라는 뜻이다. 중국을 상대하는 자리에서 일본을 끌어들이지 않음으로써, 외교의 형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이후 13일부터 14일까지 이어진 방일 외교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됐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중국을 거론하지 않았다. 중국을 견제의 대상으로 삼지도, 협상의 카드로 활용하지도 않았다. 대신 관계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청와대가 이번 방일의 최대 성과로 꼽은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두 정상 간에 구축된 개인적 친분과 신뢰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의 이번 정상회담은 세 번째로, 경주 APEC 정상회의, 남아프리카공화국 G20 정상회의를 거치며 축적된 신뢰가 이번 방일에서 확인됐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밝힌 것처럼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지금 구축한 우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풀어나가자”는 공감대가 회담 말미에 자연스럽게 오갔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상태가 형성된 것이다. 싸우기 전에 이미 질 수 없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실질 협력도 뒤따랐다. 양국은 경제 안보와 과학기술, 인공지능, 지식재산권 보호 등 교역 중심을 넘어선 포괄적 협력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일 경제·통상 협의 재가동, 실무 협의 지속 역시 합의됐다. 과거사 문제에서도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유해의 DNA 감정 추진이라는 구체적 진전이 나왔다.

명분은 흐리지 않되, 실리는 조용히 챙긴 전형적인 병법적 전개였다.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 정책 공조 역시 확인됐다. 일본 수산물 문제, CPTPP 가입 논의처럼 민감한 사안도 정면 충돌이 아닌 실무 협의의 틀로 넘겼다. 손자가 말한 것처럼, 적을 직접 말하지 않고 지형을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중국과 일본이 서로 불편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양국 모두가 이번 외교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이 대통령은 어느 쪽에서도 ‘상대국을 활용하지 않았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위험한 전술은 한 적을 상대하면서 다른 적의 이름을 빌리는 것인데 이번 외교에는 그런 장면이 없었다.

아이러니는 분명하다. <손자병법>은 중국 책이지만, 이번 외교에서 <손자병법>답게 활용한 쪽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었다. 그것도 중국식 권모술수가 아니라, 박병영을 통해 한국 현실에 맞게 재해석된 병법이었다.

외교는 말의 양으로 평가되지 않으며, 어떤 말을 하지 않았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지난 4일부터 14일까지 이어진 대통령의 방중·방일 외교는 바로 그 사실을 보여줬다. 감정을 자극하지 않았고, 상대를 비교하지 않았으며, 갈등을 중재하려 들지도 않았다. 대신 신뢰를 축적했고, 구조를 만들었으며, 선택지를 제한했다.

외교는 하루의 이벤트가 아니라 누적된 신호의 결과다. 이번 외교에는 즉흥이 아니라 설계가 있었고, 선언이 아니라 병법이 있었으며, 감정이 아니라 계산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계산의 밑바닥에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다시 살아난 박병영의 <손자병법>이 작동하고 있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 그것이 이번 외교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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