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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악몽 잊었나... 양민혁·배준호는 이민성호의 '구세주'가 아니다

파이낸셜뉴스 전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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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악몽 잊었나... 양민혁·배준호는 이민성호의 '구세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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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혁·배준호가 마법사 아니다"… '무전술'밑에선 고립될 뿐
"나고야 비극 막으려면" 전술 시스템부터 뜯어고쳐야


2023 아시안컵 당시 손흥민 위로하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연합뉴스

2023 아시안컵 당시 손흥민 위로하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양민혁이 오면 달라진다." "배준호가 합류하면 공격이 풀릴 것이다" "김지수가 오면 수비가 좋아질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전 졸전 이후, 곳곳에서 들리는 위로이자 변명이다. 사실 이번 대회는 FIFA 의무 차출 규정이 없어 양민혁(코번트리), 배준호(스토크 시티), 이현주(아로카), 김지수(카이저슬라우테른) 등 핵심 유럽파들이 합류하지 못했다.

팬들은 9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이들이 합류하면 '황금 멤버'가 구축되어 아시아를 제패할 것이라며 '행복회로'를 돌린다. 하지만 냉정해지자. 우리는 불과 2년 전, '선수 이름값'에 취해 전술을 방기했다가 어떤 참사를 겪었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바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시절이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이강인이 카타르 도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대한민국과 바레인의 경기에서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은 후 동료 선수들과 기뻐하고 있다. 뉴스1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이강인이 카타르 도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대한민국과 바레인의 경기에서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은 후 동료 선수들과 기뻐하고 있다. 뉴스1


클린스만호는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했다. 잉글랜드 득점왕 손흥민, 바이에른 뮌헨의 철기둥 김민재, 파리 생제르맹의 이강인이 있었다. 그밖에 한국은 골키퍼를 제외한 전 스쿼드를 유럽파로 구성했다. 황인범, 설영우, 정우영 등 대부분의 선수들은 유럽에서 뛰는 핵심 선수들이었다. 팬들은 우승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세부 전술 없이 "너희가 알아서 해라" 식의 방임 축구로 일관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동선이 겹쳐 허둥댔고, 개개인의 능력으로 간신히 연장 승부를 끌고 가는 '좀비 축구' 끝에 4강에서 요르단에게 굴욕적인 완패를 당했다.

최근 코번트리로 임대된 양민혁.연합뉴스

최근 코번트리로 임대된 양민혁.연합뉴스


지금 이민성호에서 그 '클린스만의 향기'가 짙게 난다는 이야기가 많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보여준 U자 빌드업, 유효슈팅 1개의 빈공, 실종된 압박 타이밍. 이는 선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감독이 입힌 '색깔'이 없기 때문이다. 전술적 시스템이 붕괴된 팀에서는 메시가 와도 고립된다. 하물며 아직 성장 중인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유럽파가 없어서 졌다"는 변명이 더욱 궁색한 이유는 라이벌 일본의 행보 때문이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 2028 LA 올림픽을 대비해 2살 어린 U-21 대표팀을 파견했다. 심지어 아시안게임조차 U-21 대표팀으로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일본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 10득점 무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다. 어린 선수들로도 완벽한 조직력을 보여주는 일본 앞에서, U-23 형님들을 데리고도 "유럽파가 없어서"라고 징징대는 건 비겁한 핑계일 뿐이다.

축구대표팀 배준호.뉴스1

축구대표팀 배준호.뉴스1


이민성 감독이 믿는 구석이 혹시 "아시안게임 때 유럽파들이 와서 해결해 주는 것"이라면, 이는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소속팀에서 체계적인 전술 훈련을 받고 있는 양민혁과 배준호가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약속된 플레이 없이 "네가 드리블해서 뚫어라"는 식의 '해줘 축구'를 강요받는다면? 그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외로운 섬이 될 것이다.

상대 팀들은 바보가 아니다. 일본이나 이란, 우즈벡은 한국의 특정 선수만 봉쇄하면 팀 전체가 마비된다는 것을 간파할 것이다. 클린스만호의 손흥민이 집중 견제에 시달릴 때, 이를 타개할 플랜 B가 없어 무너졌던 장면이 이민성호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민성 23세 이하(U23)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사진=뉴스1

이민성 23세 이하(U23)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사진=뉴스1


'무전술' 감독 밑에서 슈퍼스타는 구세주가 아니라 희생양이 될 뿐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선수 탓, 날씨 탓, 운 탓, 싸움 탓을 하며 떠났지만, 남겨진 한국 축구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민성 감독은 지금 "유럽파가 없어서"라고 안도할 때가 아니다. 있는 선수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9월 나고야 아시안게임은 양민혁과 배준호의 화려한 쇼케이스가 아니라, 한국 축구의 몰락을 알리는 장송곡이 울려 퍼지는 무대가 될 지도 모른다. 클린스만의 악몽을 또다시 반복하기엔, 우리 선수들의 재능과 청춘이 너무나 아깝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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