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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부터 ‘케데헌’의 까치·호랑이까지… ‘K민화’의 모든 것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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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부터 ‘케데헌’의 까치·호랑이까지… ‘K민화’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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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갤러리현대 본관·신관서 민화 주제 두 전시회 동시 개막
거대한 12폭 병풍 그림 ‘봉황공작도(鳳凰孔雀圖)’. 해와 달·거북이·불로초·사슴 같은 전통적 십장생 배경 위에 20세기 초 유행한 봉황과 공작이 결합된 구성이다. 종이에 채색, 169×713㎝.  /갤러리현대

거대한 12폭 병풍 그림 ‘봉황공작도(鳳凰孔雀圖)’. 해와 달·거북이·불로초·사슴 같은 전통적 십장생 배경 위에 20세기 초 유행한 봉황과 공작이 결합된 구성이다. 종이에 채색, 169×713㎝. /갤러리현대


압도적인 규모의 12폭 병풍 ‘봉황공작도’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가로 713㎝, 세로 169㎝. 우람한 오동나무 둥치엔 붉은 봉황이 서 있고, 하늘에서 흰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내려온다. 한쪽에선 꼬리 장식을 길게 뻗은 공작 한 마리가 도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정병모 전 경주대 교수는 “해와 달·거북이·불로초·사슴 같은 전통적 십장생 배경 위에 20세기 초 유행한 봉황과 공작의 도상이 결합된 구성”이라며 “화면에 가득한 상서로운 새들은 이상향을 상징한다”고 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에서 개막한 '장엄과 창의: 한국 민화의 변주' 2층 전시장 전경.  /갤러리현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에서 개막한 '장엄과 창의: 한국 민화의 변주' 2층 전시장 전경. /갤러리현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는 세계에서 열광하는 ‘K민화’로 새해 첫 전시의 문을 열었다. 본관과 신관에서 14일 동시 개막한 두 기획전은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민화의 과거와 현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본관에서 열리는 ‘장엄과 창의: 한국 민화의 변주’는 전통 민화와 궁중화 27점을 통해서 조선 회화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희귀작이 다수 나왔다.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1년 넘게 소장자를 찾고 설득해서 처음 외부로 나온 작품들이 대부분”이라며 “박물관급으로 명품만 엄선했다”고 밝혔다.

특히 ‘봉황공작도’는 창덕궁 부벽화(付壁畵) 수준의 크기와 완성도로 공간을 압도한다. 전시를 자문한 정병모 전 교수는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가진 궁중화원이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며 “왕실의 권위를 위해 그린 궁중화와 서민의 그림인 민화가 19세기 말~20세기에 이르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쌍룡희주도(雙龍戱珠圖), 19세기, 종이에 채색, 210×469.2cm. /갤러리현대

쌍룡희주도(雙龍戱珠圖), 19세기, 종이에 채색, 210×469.2cm. /갤러리현대


화조산수도(花鳥山水圖). 달리는 기차가 그려져 있어 일제강점기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에 채색, 127.5×349cm. /갤러리현대

화조산수도(花鳥山水圖). 달리는 기차가 그려져 있어 일제강점기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에 채색, 127.5×349cm. /갤러리현대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노는 ‘쌍룡희주도(雙龍戱珠圖)’도 처음 전시에 나왔다. 조선 궁궐에서는 용 대신 두 봉황이 구슬을 갖고 노는 그림을 주로 그렸지만, 1897년 조선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제의 상징인 용이 등장한다. 갤러리 측은 “쌍룡희주를 대형 병풍으로 구현한 사례는 많지 않아 귀한 작품”이라고 했다. 터럭 한 올까지 살아있는 듯한 ‘호피도’, 달리는 기차가 그려진 일제강점기 무렵의 ‘화조산수도’도 눈길을 붙잡는다.

까치호랑이(虎鵲圖), 19세기, 종이에 채색, 93×60 cm. /갤러리현대

까치호랑이(虎鵲圖), 19세기, 종이에 채색, 93×60 cm. /갤러리현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호랑이(더피)와 까치(수지)의 원류로 K컬처의 아이콘이 된 ‘까치호랑이’도 여럿 나왔다. 권력의 상징인 호랑이가 민중을 의미하는 까치의 외침을 듣고 있다. 첫 번째 방에 전시된 호랑이 그림만 6점. 포즈와 얼굴 표정이 다 다르면서도 하나같이 해학적이고 친근하다.

이두원, '소나무 아래 도깨비 호랑이와 까치'(2026). 수제 울에 먹, 아크릴, 과슈, 울실 스티치, 158.5×122.5cm. /갤러리현대

이두원, '소나무 아래 도깨비 호랑이와 까치'(2026). 수제 울에 먹, 아크릴, 과슈, 울실 스티치, 158.5×122.5cm. /갤러리현대


전통 민화의 명맥을 잇는 동시대 작가들을 함께 선보인 것도 전시의 미덕이다. 신관과 두가헌 갤러리에서 개막한 ‘화이도(畫以道)’는 김남경, 김지평, 박방영, 안성민, 이두원, 정재은 등 작가 6명의 작품 75점을 선보인다. 민화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동시대 미감 속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확장되는지 보여준다.


안성민, '구름물-족자'(2025). 자작합판에 먹, 안료, PVA, 102.5×38.2×3.5cm. /갤러리현대

안성민, '구름물-족자'(2025). 자작합판에 먹, 안료, PVA, 102.5×38.2×3.5cm. /갤러리현대


이번 전시는 2016년 갤러리현대가 예술의전당과 공동 기획했던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전’의 10주년 프로젝트로 마련됐다. 당시 호평 속에 열린 전시는 미국 뉴욕 찰스왕센터, 캔자스 스펜서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 순회전을 이어갔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부회장은 “해외 미술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민화는 한국만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장르’라고 열광한다”며 “민화를 재해석한 현대 작가들을 더 많이 소개해달라는 요청이 많다”고 했다. 전시는 2월 28일까지.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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