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에서 1급까지인 행정 공무원 직급에서 모든 승진이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의미가 큰 승진은 5급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사무관’으로의 승진은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진입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직급명에도 ‘관’이 붙고, 기초지자체의 경우에는 과장으로 보임될 수 있다. 중앙이나 광역지자체에서도 팀장급이니 권한과 책임이 큰 중견공무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5급에 바로 임용되는 시험은 ‘고시’라 불릴 정도로 어렵고, 9급부터 시작하는 공무원의 경우 평생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직급이 5급인 이들도 많다.
조선의 관직은 9품에서 1품까지, 이를 다시 정(正)과 종(從)으로 나누어 총 18개의 품계가 있었다. 당연히 품계가 높아질수록 승진의 기쁨도 크겠지만, 공무원 5급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 품계는 6품이 아닐까 싶다. 1712년 음력 11월26일, 엄경수는 공무원 인사위원회에 해당하는 도목정사를 통해 정6품인 성균관 전적으로 승진했다. 1705년 대과에 급제한 후, 7년 만의 경사였다. 함께 합격한 동료들에 비해 꽤나 늦은 승진이었지만, 6품직으로의 승진은 이전 모든 억울함을 상쇄할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엄경수는 유난히 승진운이 없었다. 그 역시 대과 급제 후 승문원에서 권지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권지는 지금의 ‘시보’ 정도 개념이니, 실직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1년 정도 권지 생활을 하면 실직에 임명되는 게 관례였지만, 선임자들의 인사 적체가 심해 엄경수는 권지 생활만 3년을 했다. 그러다가 1708년 여름 드디어 권지 생활을 끝내고 실직에 오를 차례가 되었지만, 선임 관리 중 한 명이 엄경수가 권지 생활 중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는 사실을 문제 삼아 이를 반대했다. 시보의 설움이었다.
조선의 관직은 9품에서 1품까지, 이를 다시 정(正)과 종(從)으로 나누어 총 18개의 품계가 있었다. 당연히 품계가 높아질수록 승진의 기쁨도 크겠지만, 공무원 5급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 품계는 6품이 아닐까 싶다. 1712년 음력 11월26일, 엄경수는 공무원 인사위원회에 해당하는 도목정사를 통해 정6품인 성균관 전적으로 승진했다. 1705년 대과에 급제한 후, 7년 만의 경사였다. 함께 합격한 동료들에 비해 꽤나 늦은 승진이었지만, 6품직으로의 승진은 이전 모든 억울함을 상쇄할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엄경수는 유난히 승진운이 없었다. 그 역시 대과 급제 후 승문원에서 권지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권지는 지금의 ‘시보’ 정도 개념이니, 실직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1년 정도 권지 생활을 하면 실직에 임명되는 게 관례였지만, 선임자들의 인사 적체가 심해 엄경수는 권지 생활만 3년을 했다. 그러다가 1708년 여름 드디어 권지 생활을 끝내고 실직에 오를 차례가 되었지만, 선임 관리 중 한 명이 엄경수가 권지 생활 중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는 사실을 문제 삼아 이를 반대했다. 시보의 설움이었다.
이로 인해 그해 겨울이 되어서야 겨우 품계에 있는 실직에 임명되었다. 다행히 실직에 임명된 이후, 여러 관서를 옮기면서 빠르게 승진이 이루어졌고, 드디어 6품직 승진을 앞두게 되었다. 그러나 도목정사 과정에서 선임 가운데 한 명이 산관직(품계만 있고 직책이 없는 자리)에 있다가 복귀하면서 엄경수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대과 합격자들이라면 비교적 쉽게 넘는 6품직 승진을 그는 또 6개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그해 겨울 도목정사는 이듬해 봄으로 연기되었고, 그 이듬해 봄에는 왕의 건강 문제로 도목정사가 시행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엄경수는 부친상을 당했고, 결국 삼년상을 치르기 위해 사직해야 했다. 엄경수에게 6품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만 2년이 조금 넘는 기간의 삼년상을 마치고 엄경수는 관례에 따라 이전 직책으로 복귀했다. 이러한 기다림 끝에 1712년 겨울 엄경수는 드디어 정6품직인 성균관 전적으로 승진했다. 말 그대로 ‘6품으로의 승진’인 ‘승육(昇六)’에 도달하면서, 엄경수는 참상관(參上官)이 되었다. 이제 그는 조정의 중견 관료로 인정받았고, 지방관으로 나갈 수 있는 자격도 갖추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말 타고 출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반역이나 불효 등과 같은 중죄가 아니면 직첩도 빼앗기지 않게 되었다. 1713년 새해는 그야말로 엄경수의 해였다.(출전: 엄경수, <부재일기>)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엄경수의 승진운은 많은 직장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을 것이다. 고위 공무원도 아니고 당상관으로의 승진도 아닌, 5급, 그리고 6품직으로의 승진이 일상인들의 정서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역사는 당상관으로 승진한 사람들을 기억하지만, 일상에는 6품직으로의 승진을 위해 목매는 이들이 더 많았다. 장관이나 차관이 되는 것보다, 5급 승진에 목매는 이들이 많은 우리네 일상처럼 말이다. 1713년 새해가 그런 엄경수의 해였던 것처럼, 2026년 역시 엄경수처럼 살아가는 모든 일상인들의 해이기를 바라 본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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