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골턴의 논문 ‘대중의 목소리’(Vox Populi)에 나온 소 무게를 예상한 787개 답변의 통계. |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최근 우리 사회의 영원한 관심사인 교육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틀린 말의 유용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몇사례를 들어 잠시 논하고자 한다.
1. 1907년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대중의 목소리’라는 프랜시스 골턴의 논문은 지금도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끔 인용된다. 이 논문은 영국 플리머스에서 열린 가축 박람회에서 일어난 소 한마리의 체중을 알아맞히는 게임에 대해 보고한다. 재미있는 것은 800여명 참가자의 짐작 대부분은 오류가 컸지만, 그들의 중간값은 실제 무게 543㎏을 1% 이내 편차로 맞혔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지혜’라는 이름이 적합한 이 현상은 지금도 가끔 연구 대상이다. 즉, 여러 틀린 의견들의 ‘평균’을 취했을 때 좋은 답에 가까워지는 현상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가 질문이고 그에 대한 각종 이론도 제시된다. 복잡한 현상을 뒷받침할 신빙성 있는 이론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대중의 지혜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여러 요소 중 참가자의 독립성과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데는 어느 정도 합의가 있는 것 같다.
2. 수학은 인간 담론 가운데 가장 정확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유명 학술지에 현재 실리는 논문들도 대부분 오류를 포함한다. 계산 실수는 물론 굉장히 흔하고 논리적인 결함도 많다. 가령 엄밀하게 따졌을 때 필요한 가정이 명시되지 않은 경우는 허다하다. 내가 연구하는 산술기하 분야에서는 유명한 논문 중에도 합성함수의 계산이 잘못되는 일이 흔하다는 게 꽤 널리 알려져 있다. 수학증명의 기계화에 관심 많은 계산 과학자 데이나 스콧에 따르면 첨단 논문이 아니라 상당히 조심스럽게 검증된 수학 교과서에서도 가정이 빠진 경우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수학자들 대부분은 이를 큰 수고 없이 교정할 수 있는 ‘사소한 오류’라고 믿는다. 수학자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속담 중에 ‘중요한 수학 논문일수록 오류가 많다’는 말이 있다. 한편으로는 농담이지만 거기에 담긴 진정한 의미도 여러가지다. 가령 중요한 논문은 대체로 현재 개발되고 있는 첨단 수학을 다루기 때문에 전체적인 논리적 안정성을 갖추기 어렵다는 뜻이 담겨 있다. 쉽게 말하면 모험은 실수를 수반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중요한 논문일수록 많은 사람이 읽기 때문에 오류가 쉽게 드러난다는 뜻도 포함된다.
어쨌든 틀린 명제가 수학의 진전에 기여하는 일은 일상적으로 많다. 여러 수학자들이 판단했을 때 오류가 있더라도 ‘근본은 맞다’는 데에 의견이 모일 때이다. 때로는 그런 합의의 형성이 수백년 걸리기도 한다. 18세기 제일의 수학자로 여겨지는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착안 가운데는 사소한 실수가 아닌 심각한 결함이 있는데도 돌아보았을 때 창조적 잠재성이 가득했던 것들이 많다. 수학적 결과물은 흠이 있는 기본 골격이 나온 이후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사실이 드러난다는 인상이 강하다.
3. 실험에 의존하는 과학 연구는 더더욱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2010년께부터 심리학과 의학으로부터 시작해 많은 학문으로 ‘재현성 위기’가 퍼져 나갔다. 유명 학술지에 실린 논문 가운데도 실험 결과가 재현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의식이 생긴 것이다. 가령 2015년에 심리학자 브라이언 노섹이 지휘한 재현성 검증 프로젝트를 보면 검사한 심리학 논문 100개의 실험 결과 중 재현 가능한 것은 36%에 불과했다. (당연히 이에 대한 반박도 있었다.) 다행히도 이런 노력의 산물로 실험 과학의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운동이 활성화되기도 했다.
사회와 정치, 교육으로 담론의 영역을 확장하면 어떨까. 어느 정도 자신을 갖고 마음에 드는 의견이나 이론이 맞다는 확신을 표현할 수 있을까? 교육에 관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느냐를 따지기 전에 현재 교육의 상태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너무나 어렵다. 전문 지식과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의견조차 갖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문가의 지식도 정확하게 맞는 것이 없다. 그리고 엉뚱한 의견이 되레 진리를 밝히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은 인간사에서 수시로 일어난다. 결국은 사고와 탐구의 어느 영역에서나 틀린 말, 서투른 말, 편견 가득한 말의 이상한 융합으로 또는 대치 관계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의도치 않은 협업으로 인류의 이해가 계속 증진되는 불가사의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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