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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고 친해진다’는 트럼프의 새 독트린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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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고 친해진다’는 트럼프의 새 독트린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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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특사 "가자지구 평화계획 2단계 개시" 발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방문을 마치고 메릴랜드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도착한 뒤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프린스조지스/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방문을 마치고 메릴랜드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도착한 뒤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프린스조지스/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침공에 이어 이란에도 무력 개입의 으름장을 놓고 있다. 주권국에 대해 무력 침공을 공깃돌 놀이처럼 하는 것을 놓고 국제법 위반이니, 전후 국제질서가 붕괴된다느니 하는 얘기는 이제 입만 아프다.



베네수엘라 침공이나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만들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이른바 그의 ‘돈로주의’, 즉 서반구 우선주의 전략으로 해석한다. 트럼프의 서반구 우선주의가 미국 국력의 한계에 조응한 것이기도 하다. 전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이 주도하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패권을 지탱하기 위한 비용과 의무를 더이상 감당할 수도 없고, 하기도 싫다는 것이 트럼프의 말과 행동이다.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공고한 성채를 지어 웅거하고는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역외균형 전략을 세우려 한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일정 세력권을 인정하고, 대신에 그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을 내세워 세력 균형을 맞추고, 필요시에는 미국이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침공으로 카리브해에 대한 미국의 장악력은 분명 높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베네수엘라 침공의 실익이 뭐냐는 거다.



니콜라스 마두로를 잡아왔지만, 베네수엘라에는 여전히 마두로 없는 마두로 정권이 유지 중이다. 트럼프는 마두로만 잡아가고는 우고 차베스 이후 베네수엘라 기존 세력과 좋게 말하면 협력하고, 나쁘게 말하면 짬짜미 중이다.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권을 확보했을 수는 있지만, 석유회사들은 투자를 꺼리고 있다. 생산비용이 높은데다 노후화된 생산시설을 복구하는 비용을 계산하면, 베네수엘라 석유는 석유회사들에는 먹을 것은 없고 버리기는 아까운 닭갈비, 계륵 같은 존재다. 애초 석유 메이저들은 석유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느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베네수엘라 석유를 아예 시장에서 퇴출하는 것을 원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직까지는 여전히 전략자원인 석유에 대한 전세계적 통제력을 확보해서, 중국이나 러시아를 압박하겠다는 큰 전략적 그림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란 무력 개입도 이런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중국은 소비하는 석유의 약 20%를 이란에서 수입한다.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에도 통제력을 확보한다면, 중국은 물론이고 석유 수출에 사활을 거는 러시아의 목줄도 쥘 수가 있다.



문제는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뒷마당이니 마두로라도 잡아왔지만, 이란을 공격한다면 그 목표와 목적을 과연 어느 정도로 설정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란을 때려서 피해를 줄 수 있고, 그 여파로 이란의 이슬람공화국 체제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미국이 군사력을 진주해서 ‘레짐 체인지’(정권교체)와 ‘네이션 빌딩’(국가 재건)을 추진하지 않는 한 이란은 미국이나 중동에 도움은커녕 전세계에 막대한 혼란을 부를 진원지가 될 것이다. 설사, 이란에서 정권교체와 국가 재건을 추진한다고 해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는 그 결말을 잘 말해준다.



이란과 원수였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수니파 왕정국가들이 트럼프에게 이란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로비와 설득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공격 이후 혼란도 두렵지만, 트럼프가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침공 뒤 선거가 언제 치러질지, 로드리게스 임시정부를 대체하는 세력이 나올지는 오리무중이다. 트럼프는 그저 차베스와 마두로의 기존 세력과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냐”며 지낼 공산이 크다. 마두로 없는 마두로 정권도 이번 기회에 미국에 져주는 척하며 그토록 원하던 석유 수출도 재개하고, 봉쇄와 제재도 해제받을 수 있다.



트럼프가 이란을 공격한다고 해도,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 같은 정세가 재현될 수 있다. 트럼프는 이란의 핵과 석유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했다고 선언하고, 이란 역시 기존 체제 세력이 건재한 가운데 미국의 통제하에 국제사회로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줄 공산이 크다.



싸우고 친해진다는 말이 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를 보면 그 말이 딱 어울린다. 트럼프는 말 안 듣는 아이를 한대 쥐어박아서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받는 데 만족감을 느끼는 골목대장이다. 하지만 차베스주의자들이 건재한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계속 순종적이기만 할까? 미국과 이란은 어떻게 될까?



이제, 트럼프의 미국은 무력 개입을 대외 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쓰고 있다. 그런데 그 무력 개입이 오히려 미국의 적들에게 장기적으로 날개를 달아주는 효과를 낳지는 않을까? 트럼프의 미국이 설치는 세계에서 우리는 이제 상식적 판단을 중지해야 한다.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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