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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4단 “위기 청소년들, 바둑판 포석하듯 마음 다스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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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4단 “위기 청소년들, 바둑판 포석하듯 마음 다스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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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4단이 지난해말 열린 GS칼텍스 ‘마음톡톡 프로그램’ 하반기 수료식에서 청소년들에게 바둑을 가르친 소회를 말하고 있다.

강훈 4단이 지난해말 열린 GS칼텍스 ‘마음톡톡 프로그램’ 하반기 수료식에서 청소년들에게 바둑을 가르친 소회를 말하고 있다.


“이 모양은 뭐라고 하지?”(강훈 4단)



“(한참 생각하더니) 호구요!”(학생)



강훈 4단 “그렇지”라며 활짝 웃는다. 바둑판 위에서 서툴지만 평화롭게 오가는 손길과 돌 놓는 소리가 한가롭고 차분하다. 지난달 29일 전남 여수교육지원청 3층 회의실에서 열린 지에스(GS)칼텍스 주최 ‘2025년 마음톡톡 치유프로그램 하반기 과정’ 수료식 행사장의 풍경이다.



이날 수료증을 받은 7명의 학생들은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지역의 중·고교 학생들이다. 사회가 정한 법의 시선으로 보면 위법 행위를 했지만, 사회는 또한 청소년기의 학생들의 특수성을 감안해 일체의 행정 자료를 남기지 않은 채 정상 궤도에 복귀할 수 있도록 완충 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마음톡톡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과오의 꼬리표는 영원히 사라진다.



이미 상반기 3개월간 심리치료(8회), 바둑수업(7회) 등을 마친 8명은 졸업을 했고, 하반기 7명의 학생들은 이날 마지막 바둑수업을 들었다. 전남 순천 한국바둑고 교사로 마음톡톡 프로그램에 처음 도입된 바둑수업을 1년간 진행한 강훈 4단은 “바둑 말고는 다른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가르칠 때마다 아이들이 해맑고 착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기소유예 처분받은 중·고 학생들
‘마음톡톡’ 바둑수업 1년간 진행
“바둑판 돌 놓는 법, 예절부터 가르쳐
힘들 때 여유 갖고 행동할 수 있길”





이날은 지에스칼텍스 바둑팀의 김영환 감독과 김정현 9단이 특별히 참석해 분위기는 더 활기가 넘쳤다. 김정현 9단은 다면기로 학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안겼고, 학생 한명과 짝을 이룬 페어 바둑에서는 강훈 4단 짝과 팽팽한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김정현 9단은 “뜻깊은 자리에 초대 받았는데, 나름 집중해서 바둑을 두는 아이들을 보니 반갑고 뿌듯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바둑을 지도하는 김영환(왼쪽 셋째) GS칼텍스 감독, 김정현(둘째) 9단, 강훈(셋째) 4단. 한국기원 제공

아이들에게 바둑을 지도하는 김영환(왼쪽 셋째) GS칼텍스 감독, 김정현(둘째) 9단, 강훈(셋째) 4단. 한국기원 제공


한번에 2시간씩 총 7회의 수업을 받은 학생들의 실력은 세지 않다. 김영환 감독은 “바둑돌이 뭉쳐있네, 분위기가 마치 오목 두는 것 같은데”라고 농담해 지켜보던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스승 강훈 4단은 “엉덩이 들썩이지 말고 집중해” “조금만 더 생각해 봐”라며 제자들이 좀 더 잘 두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이날 바둑수업은 내용보다는 사람 관계의 중요성을 알리는 듯했다. 아이들은 얘기할 상대를 만나고, 눈과 눈을 맞대고 소통하는 경험 속에서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는 듯했다. 강훈 4단과 짝을 이룬 지역 고교 3학년 학생은 “바둑을 두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수 앞을 내다봐야하고, 판 전체를 봐야하기 때문에 생각을 많이 한다. 집에서 가면 할아버지랑 둘 것”이라고 말했다. 1년 유급으로 한 학년을 더 다녀야 하는 그는 “기술 분야 쪽으로 공부하고, 전문대에 진학해 기능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심리치료·바둑수업 마친 15명 수료
“바둑 두면 한수 앞, 판 전체 봐야해서
많이 생각하고 마음도 차분해져”





이날 수료식에는 광주지검 순천지청 검사들을 비롯해 청소년범죄예방위원회와 여수와이엠시에이(YMCA) 회원, 심리치료를 맡았던 선생님 등이 참석했다. 한 아이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는 온 마을의 정성이 필요하다는 격언이 떠오른다. 특히 지에스칼텍스는 2016년부터 2025년까지 마음톡톡 프로그램을 통해 470여명의 청소년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재정적 지원을 하는 기업의 후원이 건조하고 박제화하기 쉬운 일종의 ‘패자 부활’ 제도에 생기를 불어 넣은 셈이다.



강훈 4단은 “갈팡질팡하는 아이들에게 바둑돌 놓는 법, 단수, 예절부터 가르쳤는데, 막상 순하고 열심히 해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에는 억울하고 힘든 순간이 있다. 그 때마다 우리 청소년들이 바둑판에 포석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대응하면 좋겠다. 바둑 수업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기다리는 여유를 느꼈다면 만족한다”고 했다.



여수/글·사진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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