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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도 연극도 상상력의 한계 ‘행방불명’…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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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도 연극도 상상력의 한계 ‘행방불명’…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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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OHO Theatrical Dept. 제공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OHO Theatrical Dept. 제공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픽사 등 할리우드 작품과 달리 손으로 수만장의 원화를 그려낸 아날로그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등을 수상하며 흥행에서도 지브리 작품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에는 11만장 넘는 수작업 원화가 사용됐다. 이처럼 아날로그적 노동과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더욱 아날로그적인 방식인 무대예술로 다시 태어났다. 상상력의 결정체인 원작과 비교해 어느 것이 더 낫다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만큼 공연 양식의 장점을 극대화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작품이다.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 대표 영화·공연 배급사인 도호 90년을 기념해 2022년 만들어졌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만든 존 케어드가 연출을 맡았고, 2024년 영국 런던, 2025년 중국 상하이 투어에 이어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했다. 존 케어드는 외신 인터뷰에서 “2017년 이 작품을 공연으로 만들기 위해 지브리 스튜디오에 찾아갔을 때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지브리는 지식재산권(IP)을 까다롭게 관리하는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놓은 숱한 필모그래피 가운데 국외 시장에서 공연으로 만들어진 건 ‘이웃집 토토로’가 유일하다. 뜻밖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순순히 승낙했는데, 이런 질문을 덧붙였다고 한다. “어떻게 하실 건데요?”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OHO Theatrical Dept. 제공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OHO Theatrical Dept. 제공


거대한 온천탕 건물과 복잡하게 이어져 있는 욕장과 방들, 건물을 둘러싼 바다까지 하나의 무대에 어떻게 펼칠 것인가. 영화 팬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을 제작진은 360도 회전 무대로 답한다. 주요 배경인 온천탕 입구가 돌아가면 치히로와 일꾼들의 실내 공간이 등장하고, 그 옆의 불을 때는 가마가 있는 보일러실, 유바바의 방 등이 회전하며 장면 전환을 한다. 또 다양한 디자인의 문들을 활용한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미로처럼 복잡한 실내 공간을 표현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사가 원작 영화와 흡사하게 전개된다. 낯선 동네로 이사하면서 낙심한 치히로는 엄마·아빠를 따라 차를 타고 가던 중 길을 잃고 숲의 낯선 건물로 들어간다. 엄마·아빠는 주인 없는 식당에서 정신없이 음식을 먹다가 돼지로 변하고, 치히로는 부모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기 위해 유바바라는 나쁜 주인이 운영하는 정령들의 목욕탕에 일꾼으로 들어가게 된다. 센은 유바바가 치히로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OHO Theatrical Dept. 제공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OHO Theatrical Dept. 제공


연극이 원작과 가장 차별화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건 기기묘묘한 퍼핏(인형)들의 향연이다. 검은 옷에 탈을 쓴 가오나시, 희고 거대한 몸뚱어리의 누에신 같은 코스튬 퍼핏을 비롯해, 검은 숯검정, 유바바 얼굴을 한 새, 하쿠가 변한 흰 용을 막대 끝에 달아 움직이는 막대 인형극, 관절과 입이 움직이는 개구리 퍼핏을 뒤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형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퍼핏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특히 후반부에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일꾼들까지 잡아먹으며 거대해진 가오나시의 코스튬 퍼핏 안에 배우 12명이 들어가 긴 팔다리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장면, 여러 조각으로 나뉜 유바바의 거대한 얼굴이 합쳐지며 펼쳐지는 무서운 표정 연기, 배우 4명이 뒤에서 각각 가마 할아범의 기다린 팔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 등이 스크린 속 모습보다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유바바의 방에 굴러다니는 초록색 돌머리 삼총사는 무대에서 훈도시만 입은 배우의 얼굴과 그의 양손에 들 두개의 얼굴로 표현되는데, 원작보다 더 재치 있는 연기 덕에 원작에 없는 웃음 포인트를 만든다. 인형들에 흠뻑 빠져 보다 보면 문득 인형을 움직이는 배우, 퍼피티어들에게도 눈길이 간다. 묵묵하게 땀 흘리는 수십명의 퍼피티어들이 공연의 숨은 주인공들이라 여겨질 만큼 뛰어나고 감동적이다. 퍼핏 디자인과 연출을 한 토비 올리에는 ‘동물농장’ ‘피노키오’ ‘피터 팬’ ‘헨젤과 그레텔’ ‘인어공주’ 등 영국에서 공연된 주요 퍼핏 등장 작품들에 참여한 전문가다.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OHO Theatrical Dept. 제공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OHO Theatrical Dept. 제공


치히로 역에는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2024) 주연을 맡아 국내 영화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으며 2022년 일본 초연부터 참여했던 가미시라이시 모네와 아이돌 그룹 에이케이비(AKB)48 출신으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동 중인 가와에이 리나가 더블캐스팅됐다. 13일 공연에서 본 가미시라이시의 연기는 포니테일로 머리를 질끈 묶고 엄마·아빠를 그리워하는 초등학생 치히로의 말투뿐 아니라 표정까지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노련함을 보여줬다. 유바바는 나쓰키 마리, 하노 아키, 다카하시 히토미가 번갈아 연기하는데, 나쓰키는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유바바 목소리를 연기했던 배우다. 11인조 오케스트라가 무대 뒤에서 히사이시 조의 원작 오리지널 스코어를 연주하며, 원작 애니메이션에는 없는 새로운 노래 2곡이 공연 중간에 삽입돼 펼쳐진다. 3월22일까지.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OHO Theatrical Dept. 제공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OHO Theatrical Dept. 제공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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