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짓고 있는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 전경. 지난해 초 착공한 1기 팹(공장)은 2027년 준공 예정이다. 에스케이하이닉스 제공 |
류영철 | 부산외대 글로벌미래융합학부 교수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입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반도체 산업을 확장하고, 국가 경쟁력을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구조적 질문이다. 그럼에도 논의는 종종 ‘이전이냐, 아니냐’라는 단순한 대립 구도로 축소된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찬반 논쟁이 아니라 반도체 산업의 다음 단계를 설계하는 국가 전략이다.
수도권 집중이 반도체 산업 성장에 기여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성공 모델이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도체는 전력과 용수, 인프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산업이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와 고대역폭 메모리(HBM) 확대로 생산 능력 증설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수도권 전력망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는 냉정하게 점검해야 할 문제다. 송전망 확충은 수년이 걸리고, 사회적 갈등 비용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산업은 속도를 요구하지만, 전력 인프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간극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반도체 산업은 집적이 필수적이며, 인력 문제를 이유로 수도권 외 확장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반도체 남방 한계선’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이는 산업의 본질적 특성이라기보다는 오랜 수도권 중심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를 원인으로 오인한 논리에 가깝다. 산업과 일자리가 집중되면 인력도 따라 모이게 마련이다. 세계 주요 반도체 국가들은 이미 기능별 분산을 통해 공급망 안정성과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 분산은 약화가 아니라 확장의 방식이다.
더욱이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이제 기술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사용, 탄소 감축, 공급망 안정성은 기업 평가와 투자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 역시 알이(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선언하며 에너지 전환에 나서고 있지만, 수도권 중심 구조에서는 이행 자체가 제약을 받는다. 이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에너지 전략이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옮기자’는 주장이 아니다. 이미 진행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흔들자는 것도 아니다. 해법은 향후 증설되는 팹과 후공정,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전력과 재생에너지 여건이 갖춰진 지역으로 전략적으로 분산하는 데 있다. 이는 균형 발전을 위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전력 리스크를 줄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다.
다만 이러한 논의를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프레임 속에서 소모적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지역 간 경쟁이나 선거 이슈로 비칠 경우, 오히려 정책 논의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반도체 분산 전략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6월 지방선거 이후 차분하게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업 전략은 선거 일정이 아니라 국가의 시간표에 맞춰 설계해야 한다.
질문은 더 이상 ‘어디에 둘 것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다. 전력, 에너지, 공급망, 사회적 수용성이라는 제약 조건 속에서 수도권 초집적 모델은 분명한 한계에 도달했다. 집적은 전략이 될 수 있지만, 집착은 위험하다. 케이(K)-반도체의 다음 도약은 집중의 성공을 부정하는 데서가 아니라 그 성공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분산 전략 위에서 가능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공방이 아니라 냉정한 국가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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