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이웃 나라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전혀 다른 점이 많다. 국회를 구성하는 의원들의 출신 배경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국은 법조인이, 일본은 관료와 세습 정치인이 과대 대표돼 있다. 평소 “판사와 검사, 변호사 출신 의원이 너무 많지 않느냐?”라고 느꼈다면 맞다. 22대 국회에서 법조인 출신은 61명으로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반면 일본 국회에서 법조인 비중은 6~7%에 그친다. 대신 일본 국회는 관료와 세습 정치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나라마다 문화와 제도가 다르니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양쪽 모두 분명한 부작용을 안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균형이 필요하다는 데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부에서는 법조인 출신이 많은 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면면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언론과 정치학자들은 “정치가 사법화되면서 한국 정치가 실종됐다”고 말한다. 정치로 풀어야 할 사안을 검찰과 사법부 판단에 넘긴다. 타협 대신 고발과 수사, 재판으로 결론을 내리려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사사건건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 몰두하다 보니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법조인이 과대 대표되는 한국 국회의 풍경은 정상적인 모습이라 보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일본 국회를 보면 또 다른 극단이 드러난다. 2024년 10월 제50회 중의원 총선 결과, 전체 465명 가운데 법조인 출신은 30명 남짓이었으나 관례적으로 관료 출신과 세습 정치인이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법조인 출신으로 정계에 진출하는 유형은 대부분 변호사이고, 검사 출신은 2~3명, 판사 출신은 한 명 있을까 말까다. 이는 ‘사법 중립성’에 대한 엄격한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법을 집행하다 옷을 벗고 곧장 정치로 직행하는 것을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는 부적절한 행위로 인식한다. 일본 검찰은 정치로 가는 통로라기보다 ‘수사 전문가 집단’이라는 직업 정체성이 강하다. 한국 사회가 곱씹어볼 지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관료와 세습 정치인의 두터운 장벽이 견고하기 짝이 없다. 이들이 국회로 가는 길목을 선점하고 있어 법조인 출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넓지 않다. 일본 사회는 ‘관료 정치’에 비교적 관대하다. 재무성이나 경제산업성 등에서 정책을 다룬 경험이라면 정치도 잘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관료 출신은 세습 정치인과 함께 일본 정치의 주류를 이뤄 왔다. 세습 정치는 일본 특유의 풍경이다. 이들은 부모의 지반(地盤, 지역구), 간판(看板, 지명도), 가방(선거 자금)을 물려받아 정치를 시작한다. 자민당의 경우 이런 ‘금수저 정치인’이 30~40%에 달한다. 아베 신조, 기시다 후미오, 고노 다로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정치인 상당수가 이 부류다.
일본 중의원에서 지방 정치인들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중의원의 약 3분의 1은 지방의원이나 기초단체장을 거쳤다. 이들은 밑바닥부터 지역 기반을 닦아온 만큼 생활 정치에 익숙하고 조직력이 탄탄하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사법 중립성’을 중시하는 문화로 법조인 비중은 낮은 데 비해 관료, 세습 정치인, 지역 정치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구조는 일본 정치에 연속성과 안정성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역동성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다양한 전문 영역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진입할 통로는 좁아졌고, 정치권은 고령화되고 동질화됐다. 일본 정치가 변화에 둔감하고 위기 대응에서 느리며 현상 유지에 능한 배경이다.
한국 정치가 ‘정쟁 과잉’이라면, 일본은 ‘정치 무기력’에 가깝다. 바꿔 말해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형태의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 한국은 법조인 과잉 대표로 정치가 갈등 증폭 장치가 됐고, 일본은 관료와 세습의 과잉 대표로 정치는 고인 물이 됐다.
대안은 있을까. 균형을 맞춘답시고 직업 쿼터제를 도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권이 스스로 인재 풀을 넓히려는 선택은 가능하다. 지방의회와 시민사회, 산업·과학기술, 교육·복지 현장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국회로 진입할 수 있도록 공천 구조를 바꾸고, 정치 입문 비용을 낮추며, 정치를 ‘특권’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봉사’가 될 수 있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한국은 법조인의 나라가 아니다.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는 국회가 되기 위해서는 판검사나 싸움에 능한 정치인보다 공동체를 책임질 수 있는 정치인이 대거 나와야 한다. 여기에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와 포용, 겸손한 공적 윤리를 갖춘 정치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물론 일본처럼 관료나 세습 정치인이 판치며 정치 실종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서도 안된다. 우리 정치권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정치의 사법화’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정착시키고 책임감 있게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서경IN sk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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