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 ‘강남 최후 개발지’ 주목 개발
미분양 딛고 평당 68만원 수준서 ‘완판’
명문고 이전에 ‘학군 1번지’로 몸값 상승
29년간 재건축 좌절→정비계획안 통과
“미래 가격 예상 무의미, 은마 시대 온다”
미분양 딛고 평당 68만원 수준서 ‘완판’
명문고 이전에 ‘학군 1번지’로 몸값 상승
29년간 재건축 좌절→정비계획안 통과
“미래 가격 예상 무의미, 은마 시대 온다”
은마아파트 전경. |
“펜트하우스 조합원의 분담금이 97억원이라고 해서, 시장가가 130억이 될지 150억이 될지 예상하는 건 무의미하다. 화폐 가치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고, 또 언제 재건축이 완료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치동의 천장은 무한하다.”(2025년 11월, 대치동 D 공인중개사 대표)
대치동 은마아파트 펜트하우스의 추정분담금이 최근 97억원으로 추정되며 정비업계를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발생한 분담금 중 역대 최대 금액이다. 은마아파트는 한국의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대치동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강남 개발 ‘1세대’ 은마아파트가 걸어온 길을 추적해본다.
1980년 촬영한 은마아파트 단지 항공사진. |
강남 주변에서 중심으로…대치를 일으킨 은마
‘큰 고개’를 뜻하는 대치는 본래 경사진 언덕으로 인해 대단지 아파트를 세우기 적절치 않은 대지였다. 양재천과 탄천이 합류해 여름마다 물에 잠기는 것도 주민들의 큰 걱정거리였다. 1967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강개발3개년추진계획’을 통해 동부이촌동·압구정동·여의도·잠실지구에 아파트를 쌓아 올릴 때까지만 해도 대치동은 개발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처럼 주변부에 불과했던 대치동을 개발의 중심으로 만든 게 바로 한보그룹의 은마아파트다. 당시 탄천과 양재천에 제방을 세우고 빗물펌프장을 건설하면서, 대치동은 수해 걱정을 덜게 됐다. 이후 강남 최후 개발지로 대치동 농지를 주목한 당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은 땅 주인들에게 계약금만 주고 해당 토지를 매입해 4000가구가 넘는 은마아파트를 짓게 된다.
하지만 정 회장의 바람과 달리, 처음에는 은마아파트 분양에 차질을 빚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부동산 투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가 1978년 8월 이른바 ‘8·8 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대책에는 처음 도입된 토지거래허가제뿐 아니라 분양권을 전매할 시 양도세율을 100%로 매겨버리는 초강력 규제도 포함됐다. 이에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면서 일시적인 미분양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곧 제2차 오일쇼크로 부동산 투자 심리가 되살아나며 정 회장은 은마아파트 완판 분양에 성공하게 된다. 1970년대 당시 ‘매머드급 단지’로 통했던 이 아파트는 4424세대 대규모로, 76.79㎡(30평·전용면적) 2674세대와 84.43㎡(34평) 1750세대로 구성됐다. 30평은 분양가 2000만원, 34평은 2300만원에 선착순 분양을 진행했다. 평당 분양가가 약 68만원 수준이었던 것이다.
2017년 대치동 학원가에 학부모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 [연합·서울역사박물관 자료] |
최초 ‘위장전입’ 화제지역…학원 1300개 있는 자타공인 학군지
이후 은마아파트가 몸값을 높인 건 대치동이 ‘학군 1번지’로 자리 잡으면서다. 70년대 휘문고, 숙명여고, 경기고 등 명문고가 이전되던 시기,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함께 조성되며 대치동은 자연스럽게 학원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당시 대치동이 ‘교육→신분 상승’의 공식을 전국에서 가장 먼저 학습한 동네였다고 증언한다. 1980년대부터는 명문고 진학을 위해 주소지만 이전하는 ‘대치동 위장전입’이 처음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명문고를 졸업한 세대는 다시 대치동으로 유입돼 국내 최고 수준의 교육 환경을 형성해 나갔다.
이에 현재는 목동, 방이동, 상계·중계동 그리고 분당 등 다른 학군지보다도 압도적인 학원 밀집도를 자랑하고 있다. 서울특별시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지난 달 말 기준 대치동에는 1296개의 학원이 자리해 있다. 같은 강남권 내 반포동(303개), 잠원동(145개), 압구정동(8개)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다.
대치동 학부모들의 가장 큰 특징은 촘촘하고 빠른 정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입시 정책이 발표되면 가장 먼저 대치동에서 분석이 시작되고, 대응 전략이 수립된다. 또 대치동 출신의 서울대 의대생들을 멘토나 조교로 활용하며 ‘그들만의 세상’이 지속되고 있다. 계약금만 억대에 달하는 스타 강사들이 밀집된 시대인재 학원도 이 대치동에서 탄생했다.
대치동 학원가 이용자들의 주거지는 크게 대치동, 역삼동, 도곡동 3개 권역으로 나뉜다. 이들 지역은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남쪽에 있어 ‘테남’이라 불린다. 대치동에 위치한 은마아파트는 이 중에서도 학원가를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도보권이다. 아파트가 워낙 오래된 탓에 전세가도 저렴한 편. 전체 4000세대 중 세입자의 비중이 절반 가까이 된다.
실제 은마아파트의 전세가는 최저 5억원대에서 갱신되거나 최대 10억원을 넘기지 않고 있다. 인근 D 공인중개소 대표는 “근처 미도나 선경아파트보다도 은마아파트의 전세가가 조금 더 낮게 형성돼 있다”며 “복도식으로 구성돼 있고, 세대도 워낙 많아 관리가 더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형 보존된 은마아파트의 주방 모습. |
29년 재건축 좌절 역사…정비계획안 통과되자 43억 신고가
하지만 대치동의 상징과도 같던 은마아파트에도 아픔이 있었다. 바로 29년의 ‘재건축 좌절’ 흑역사다. 대치삼성래미안, 래미안대치팰리스 등 이미 재건축이 완료된 인접 아파트와 달리 1996년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를 발족한 은마는 25년 넘게 후보로 머물러 있었다. 집값 상승을 우려한 정부와 서울시의 철벽 규제로 매번 좌절된 탓이다.
대표적인 게 바로 2006년 도입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다. 재건축 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노린 투기 세력이 기승을 부리자, 정부는 재건축에 따른 집값 상승 이익이 조합원 1인당 3000만원을 넘을 경우 그 일부를 환수하는 제도를 꺼내 들었다. 또 재건축 가능 여부를 가려주는 잣대가 되는 아파트 안전 진단 기준도 계속 높아져 은마의 재건축 도전 ‘N수 생활’도 길어졌다.
2010년 4차례 도전 끝에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을 받았지만, 이번엔 층수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49층 높이로 새 아파트를 지으려던 은마 주민들의 꿈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35층 층고 제한을 도입하면서 좌절됐다.
2022년 35층 고도 제한이 폐지되면서 은마 주민들의 희망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지난 달 정비계획 변경안 심의가 통과되며 29년 만에 재건축에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최고 49층, 총 5893가구(공공주택 1090가구) 규모로 새롭게 탈바꿈할 예정이다.
정비계획 변경안 심의가 통과되자 은마아파트 몸값도 더 높아졌다. 지난 6일 30평 매물이 38억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경신했으며, 34평 역시 지난 10월 43억10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다시 썼다. 전문가들은 “은마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조합원 분담금 97억원 펜트하우스, 완공되면 “가치 예측 불가”
주민들은 초고급 아파트로 다시 태어날 은마아파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최근에는 공사비를 평당 9000만원으로 설정해 조합원 분담금을 추산한 결과 286㎡ 면적의 펜트하우스 분담금이 97억3000만원(31평 소유자)에 달할 거란 결과가 나왔다. 143㎡ 펜트하우스의 경우 분담금이 34억원~37억원 수준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128㎡의 추정 분담금은 31평 소유자 15억1000만원·34평 소유자는 12억3000만원을 비롯해 ▷118㎡ 31평 소유자 15억1000만원·34평 12억3000만원 ▷109㎡ 31평 소유자 12억2000만원·34평 소유자 9억4000만원 ▷96㎡ 31평 소유자 8억4000만원·34평 소유자 5억6000만원 ▷전용 84㎡ 31평 소유자 4억7000만원·34평 소유자1억8000만원으로 추정됐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고액의 분담금에도 불구하고 펜트하우스를 신청한 조합원이 12명에 달했다는 점이다. 143㎡ 펜트하우스를 신청한 조합원은 50명이었다. 30억~100억원의 분담금조차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 자산계층이 은마아파트에 몰려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이 완료되면 고급 전용설계와 학군을 모두 갖춘 초특급 신축아파트가 될 전망이다. 현재 반포에 몰려간 초고액 자산가들의 선호도 다시 대치로 몰릴 거란 예측까지 나온다. D 공인중개사 대표는 “은마의 미래 가격을 점치는 건 무의미하다”며 “화폐가치에 따라 얼마든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홍승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