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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화하는 법정드라마'에 관한 단상

아시아투데이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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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화하는 법정드라마'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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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지난주, 인기리에 방영됐던 법정드라마 '프로보노'가 종방했다. 다소 낯선 용어인 프로보노는 라틴어로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에서 따온 말이다. 흙수저 출신으로 출세만을 바라보는 엘리트 판사가 대법관의 문턱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판사직을 내려놓고, 대형 로펌 안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부서인 공익 전담 '프로보노 팀'에 들어가면서 일어나는 스토리를 다룬다. 프로보노 역시 법정 드라마의 일반적인 특징인, 중심 플롯에 진실 공방과 정의 구현을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겁기만 한 법정물은 아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와 웃음, 그리고 성장 이야기가 함께 담긴 휴먼 법정 코미디에 가깝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엔 뚜렷한 경향성이 보인다. 사회 현상으로 세간에 바람을 일으켰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후로, 예전 법정물이 하나의 소송을 중심으로 거대 담론을 이루며 전개됐다면 이제는 민사를 다루는 등 소소한 사건들이 변주돼 구성되고 있다. 스토리텔링 시장에서 우리의 담론이 미시적인 차원으로 접근 내지 이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조건에서 주장한 거대서사의 종말과 궤를 같이한다. 따라서 최근 법정 드라마가 대중에게 소구력 있는 콘텐츠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을 사회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디테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서 타인의 비극을 뉴스로 소비하는 것은, 자신의 안위를 확인하는 숭고라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기제라고 진단한다. 연장선에서 매일 일어나는 뉴스의 이슈를 스토리텔링으로 극화하여 이야기로 소비하는 것이 법정드라마다. 법정물을 수용하는 것은 허구를 통해 가학과 피학적 주체가 돼 보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론 실제 범죄행위의 주체와 대상이 될 수도 있는 확률을 떨어트리고, 현실세계를 살아가게 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우리나라 법정 드라마는 당위와 감성을 자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할리우드 작품들이 '이성에 호소하는 서사'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과 상이하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역사적 맥락 때문이지 않을까싶다. 오랜 기간 침묵을 강요받은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적 상황이 응축되어 일거에 폭발한 2016년 촛불 혁명이 그 분기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전까지 오죽하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다큐가 만들어졌겠는가. 그전까진 말할 수 없었고, 이제야 소심하게 말할 수 있다고 어필하던 것을 촛불 혁명 이후, 당위로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일반의 우리는 근본적으로 비겁한 존재다. 마찬가지로 살아남은 우린, 적당한 죄의식을 통해 기나긴 방관의 시간을 극복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콘텐츠는 진화한다. 다만 그것이 반드시 깊이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깊이와 가벼움이라는 이분법적 구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식이다. 인간의 행태와 성향, 기질, 그에 따른 행동양식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 세계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되고 있다. 인간의 상상 물의 산물인 법률은 비교적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법이 상식(Common Knowledge)으로써 우리의 공통 감각(Common Sense)에 기초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공동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식 밖의 엘리트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일정 부분 드러난 듯하다.

한편 앞으로 미디어 산업 측면에서 법정 드라마는 다양한 양태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선형적 접근 방식으로 작가 또는 기자와 같은 사법 권력에 접근이 용이한 엘리트 지식인에 의해 수집된 정보와 취재를 바탕으로 각본이 짜였다면, 이제는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우후죽순처럼 개인적 경험이 소재화되고 소비될 것 같다. 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리니어한 방식의 방송 콘텐츠의 몰락을 초래하고 넌-리니어한 게임이 생활 세계에 자리 잡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마침내 그 플랫폼을 인공지능이 지배하게 되면 개별 주체로서 인간은 셀(cell)화 되어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시뮬레이션 공간으로 매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일각에서는 법정에서 이뤄질 수 없는 정의를 대변하는 캐릭터를 내세우는 게 법정물에 있어서 시청률을 잡고 인기를 끌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인기를 끌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어떤 막장 드라마도 명함을 낼 수 없는 사회 엘리트 지배층의 막장극을 보았다. 따라서 기존의 법정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양태로 스토리텔링이 전개될 것으로 생각한다. 정의를 대변하는 캐릭터를 내세우는 법정물의 유행과 동시에 '모범택시'나 또는 '비질란테' 부류의 타격감이 대신하지 않을까 싶다. 사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사적 제재 또는 자력 구제의 콘텐츠가 유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타의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법정 드라마 역시 혼종(hybrid)의 양태로 진화할 것이다. 법정물은 이제 그 장르 안에 머물지 않고, 혼종의 방식으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장르로 발전할 것이다. 이제 일부 엘리트들이 법의 해석을 가지고 말장난하듯 정의를 논하는 세상이 아니다. 그러기엔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상식을 되살리기 위해 싸워온, 거대한 드라마의 주인공들이었다. 그간 우리는 너무 똑똑해졌고, 또 다른 우리의 이면은 그 밑천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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