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MBN 언론사 이미지

[MBN이 본 신간] '현명해졌다는 착각을 경계하라' - 의사이자 목수, 한 인간이 늙어가며 붙잡은 사유의 태도

MBN
원문보기

[MBN이 본 신간] '현명해졌다는 착각을 경계하라' - 의사이자 목수, 한 인간이 늙어가며 붙잡은 사유의 태도

속보
美특사 "가자지구 평화계획 2단계 개시" 발표


신간 '현명해질 때까지 늙지 않기'는 노년을 다룬 책이지만, 노년을 설명하거나 규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대신 이 책은 나이를 먹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언제부터 생각을 멈추었는가, 그리고 그 멈춤을 '현명해짐'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질문합니다.

저자 김영백은 평생 인간의 뇌와 신경을 다뤄온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은퇴 이후에도 나무를 깎고 다듬는 목공 작업을 이어온 사람입니다. 수술대와 작업대라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축적된 그의 경험은 이 책 안에서 하나의 태도로 만납니다.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 것, 속도를 늦추고 손의 감각을 신뢰하는 것, 그리고 판단을 미루는 것. '현명해질 때까지 늙지 않기'는 바로 이 태도를 삶의 언어로 풀어낸 수필입니다.

저자는 병과 죽음, 회복과 상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의사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데 시선은 냉정하거나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음악을 듣고, 나무의 결을 살피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시간 속에서 그는 늙어가는 몸과 변화하는 감정의 미묘한 결을 기록합니다. 이 기록들은 삶을 정의하려는 결론이 아니라, 삶을 단정 짓지 않기 위한 사유의 연습에 가깝습니다.

특히 이 책의 각 장에는 저자가 직접 만든 목공 작업물의 사진과 해설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나무를 자르고 다듬으며 그 성질을 거스르지 않는 과정은, 저자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닮았습니다. 급하게 완성하지 않고, 재료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며, 시간과 함께 만들어가는 일. 글과 목공 작업은 서로 비추며, 늙어감에 대한 사유를 보다 구체적인 감각으로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책은 또한 음악, 여행, 가족이라는 삶의 다른 층위를 자연스럽게 펼쳐보입니다. 음악은 감정을 정리하는 언어로, 여행은 익숙해진 시선을 흔드는 계기로, 가족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끝내 이해할 수 없는 타자로 등장하는데 이야기들은 단편적인 회상이 아니라, 삶을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보려는 저자의 사유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현명해질 때까지 늙지 않기'는 잘 늙는 법이나 잘 사는 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경험이 쌓일수록 더 빨라지는 판단의 속도를 경계하며, 느린 질문의 가치를 조용히 일깨웁니다.


그렇다고 특정 연령대를 위한 책은 아닙니다. 이미 나이 듦을 의식하기 시작한 이들, 혹은 자신을 규정하는 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이 책은 충분히 깊은 울림을 건넬 것입니다.

또 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태도로 현명해졌다고 단정하지 않으려고, 아직 늙지 않겠다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다짐. '현명해질 때까지 늙지 않기'는 그 다짐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사유 기록입니다.

MBN 문화부

< Copyright ⓒ MBN(www.mbn.co.kr)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