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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국내 100곳 성당·공소 답사… ‘십자가의 길’ 좇다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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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국내 100곳 성당·공소 답사… ‘십자가의 길’ 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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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회 미술’ 펴낸 박아림 교수
2026년 1월 8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 스튜디오. '한국의 교회 미술' 펴낸 숙명여대 박아림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2026년 1월 8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 스튜디오. '한국의 교회 미술' 펴낸 숙명여대 박아림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천주교 신자가 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오랜 신자들은 당연하게 여기는 교회 미술이 제겐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3년간 거의 100곳 가까운 성당과 공소(公所·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신앙 공동체)를 답사하면서 교회 미술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모았습니다.”

최근 ‘한국의 교회미술’(학연문화사)을 펴낸 박아림 숙명여대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영상으로 미사를 보다가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하면서 2021년 2월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책은 1890년대 이후 1960년대까지 한국 가톨릭 미술의 변천사를 두루 살피고 있다. 한옥에서 시작해 ‘한옥+서양식 건물’ 시대를 거쳐 서양식 건물로 정착하는 성당 건축의 변천사, 스테인드글라스의 역사, 성당 곳곳에 놓인 성모상과 제대(祭臺)의 역사와 미학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프랑스 출신 보두네 신부가 외국의 도움 없이 자신이 저축한 돈과 신자들의 헌금만으로 전주 전동성당을 완공한 지 1년 후 미사 중에 선종한 사연, 원주 용소막성당은 중국인 인부들이 기둥 높이를 2자[尺]씩 빼먹는 바람에 지붕 경사가 가팔라졌다는 등 성당별 스토리도 소개한다. 칠곡 가실성당은 프랑스(파리외방전교회)와 독일(성 베네딕도회)의 전통이 함께 남아 있어 성미술의 보고(寶庫)라고 평가했다. 거의 매쪽 박 교수와 교회 미술 전문가 정웅모 신부가 촬영한 사진과 도판이 실려 있어 이해를 돕는다.

경북 칠곡 가실성당. 이 성당은 1923년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사제가 건축했고, 1952년 이후에는 독일 성 베네딕도회가 사목을 맡아 프랑스와 독일의 성미술이 함께 보관되고 있다. 작은 사진은 가실성당에 설치된 독일의 성미술 작가인 에기노 바이너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박아림 교수 제공

경북 칠곡 가실성당. 이 성당은 1923년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사제가 건축했고, 1952년 이후에는 독일 성 베네딕도회가 사목을 맡아 프랑스와 독일의 성미술이 함께 보관되고 있다. 작은 사진은 가실성당에 설치된 독일의 성미술 작가인 에기노 바이너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박아림 교수 제공


특히 그동안 각 성당별로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십자가의 길(14처)’을 체계적으로 연구·분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과정을 14장면으로 구분해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성당 내외부에 설치한 미술품. 특히 익산 나바위성당, 진안 어은공소, 장수 수분공소, 서산 상홍리공소, 대구 신광공소에 걸려 있는 ‘십자가의 길’은 모두 같은 곳에서 제작됐다고 한다. 독일에서 수출용 다국어로 인쇄한 성화를 중국에서 만든 액자에 넣은 것이 1910년대 전국의 성당을 휩쓸었다는 것을 답사를 통해 확인한 것.

박 교수의 원래 전공은 동양 미술사 그중에서도 고구려 고분 벽화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교회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23년 한 학술회의에서 한옥 건물인 성공회 강화읍성당에 대해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초기 성당 건축과 미술에 여러 나라의 문화가 영향을 미친 점도 관심거리였다.

강의가 없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틈날 때마다 노모를 모시고 전국 성당을 찾았다. 새벽 길을 떠나 저녁까지 하루 평균 다섯 곳, 많을 때는 일곱 곳까지 답사한 적도 있다. 산속 외진 길을 운전해 공소를 찾아갈 때는 ‘박해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 깊은 산속에…’라는 마음이 들었다. 연구와 집필을 위한 답사였지만 그 과정에서 박 교수는 많은 위안과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6·25 때 인민군의 총탄을 맞은 자국이 남아 있는 음성 감곡성당 성모상은 ‘강력한 위로’를 주었다. 책 집필을 마친 주에도 강의를 마치고 저녁 무렵 감곡성당을 찾아 성모에게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음성 감곡성당의 성모상. 자세히 살피면 6.25전쟁 당시의 총알 자국이 여러 개 있다. 박아림 교수는 '강렬한 위로를 주는 성모상'이라고 말했다. /박아림 교수 제공

음성 감곡성당의 성모상. 자세히 살피면 6.25전쟁 당시의 총알 자국이 여러 개 있다. 박아림 교수는 '강렬한 위로를 주는 성모상'이라고 말했다. /박아림 교수 제공


그는 “성당과 공소는 그냥 건물이 아니라 천주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땅에 정착하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종교 문화유산”이라며 “내년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하는 외국 청년들이 천주교 문화유산도 보고 싶어 할 텐데 이 책이 가이드북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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