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창업자, 모리스 창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
엔비디아가 설계한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A100과 H100, H200을 거쳐 최신 세대에 이르기까지의 제품들은 모두 최첨단 공정에서 생산되는데, 이 공정은 사실상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TSMC가 담당하고 있다.
이 거대한 반도체 제조 기업의 출발점에는 한 기업가가 오래전에 던진 놀라울 만큼 단순한 질문이 있었다. “정말 반도체 산업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만 운영돼야 하는가?” 그 질문의 주인공은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이다.
현장에서 배운 반도체 산업
창은 1931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나 전쟁과 혼란의 시기 속에 성장했다. 중일전쟁과 국공 내전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가족과 함께 중국을 떠나야 했고, 학업 역시 여러 차례 중단과 이동을 겪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하버드대에 진학했지만 공학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돼 매사추세츠공대(MIT)로 편입해 기계공학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MIT 졸업 후 합류한 곳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였다. 당시 TI는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트랜지스터 상용화와 집적회로 개발을 주도했고, 미국 국방·우주 산업의 핵심 공급자로 자리 잡으며 기술력과 사업 역량을 동시에 갖춘 드문 회사였다. 반도체가 전략산업으로 부상하던 시기에 TI는 기술·제조·시장 이해를 모두 내부에 축적한 선도 기업이었다.
창의 잠재력을 알아본 TI는 그를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에 보내줬고, 창은 학위를 마친 뒤 복귀해 25년 넘게 근무하며 연구개발(R&D)과 제조, 사업 부문을 두루 경험했다. 그는 반도체 산업이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공정 수율과 설비 투자, 고객 관계 그리고 조직 내부의 의사 결정 구조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산업이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배웠다. 특히 대규모 자본 투자가 얼마나 모험적인지, 그리고 한번 형성된 제조 경험의 격차가 얼마나 따라잡기 어렵게 벌어지는지를 TI에서 직접 목격했다.
창은 부사장 자리까지 오르며 최고경영자(CEO) 후보로 거론됐지만, 그 자리에 오르진 못했다. 그럼에도 반도체 산업의 최전선에 있던 최고 기업에서 성공과 좌절을 모두 경험한 이력은 훗날 그가 기술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려는 문제의식으로 나아가는 결정적 토대가 됐다.
TSMC 만들어 낸 3가지 원칙
당시 반도체 산업의 상식은 분명했다. 설계, 제조, 판매를 한 회사가 모두 수행하는 수직통합(IDM)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자본과 공정 노하우가 필요한 영역이었고, 이를 외부에 맡긴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이 모델은 반도체 산업의 빠른 발달과 함께 점차 한계를 드러냈다. 공정은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졌고, 공장 하나를 짓는 데 필요한 자본은 일부 대기업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때 창은 기존 전제를 뒤집는다. 설계와 제조는 분리될 수 있으며, 반도체가 전문화될수록 오히려 분리돼야 한다고 봤다. 반도체 설계를 포기하고 제조에만 집중한다는 발상은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1987년 대만 정부의 산업 고도화 전략과 맞물려 TSMC 설립으로 현실화됐다.
TSMC는 창업 초기부터 세 가지 원칙을 분명히 했다. 첫째,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둘째, 제조에만 집중한다. 셋째, 기술 개발에 아낌없이 투자해 신뢰를 쌓는다. 이 원칙들은 단기 수익보다 장기적인 신뢰와 축적을 위한 선택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 비즈니스 모델이 당시 미국 반도체 생태계의 이해와 정교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설계 역량과 장비,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미국 내 제조 노동력 비용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또 노사 구조와 규제 환경 속에서 대규모 반도체 공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TSMC는 미국 기업들의 핵심 설계 자산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제조에 수반되는 자본 투자와 운영 부담을 대신 떠안아 주는 역할을 했다. 이는 미국으로서는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모델이 아니라, 미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할 보완재에 가까웠다.
이 모델의 진가는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반도체 설계에 특화된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지만, 이들은 자체 공장을 운영하기에는 비용과 위험이 지나치게 컸다. TSMC는 약속대로 고객의 설계 자산을 보호하고 공정 로드맵을 함께 공유하며, 어떤 경우에도 자체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반복적으로 증명했다. 그 결과 반도체 제조 부문에서 가장 강력한 진입 장벽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가 됐다.
오늘날 세계 최첨단 반도체의 상당수는 대만에서 생산된다. 미국의 첨단기술 기업도, 중국의 추격 전략도, 유럽의 산업 재건 구상도 모두 이 생산능력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한다. 한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선택은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을 만들어냈고, 그 병목은 이제 국제 정치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다.
기술 혁신으로는 충분치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삼성전자조차 반도체 분야에서는 종합반도체(IDM) 구조 속에서 고객이자 경쟁자라는 이중적 위치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반면 TSMC는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스스로 제품 브랜드를 갖지 않고 고객과 경쟁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며, 제조에만 집중하는 구조를 선택한 것이다.
한때 TSMC는 자체 브랜드가 없고 기술적으로도 선도 기업을 추격하는 위치에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평가는 근본적으로 수정됐다. TSMC는 기술 성능의 우열을 넘어 기업 간 신뢰라는 가장 모방하기 어려운 자산을 축적했고, 이를 기반으로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서 사실상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이는 특정 기술의 승리가 아니라 산업 구조를 다시 설계한 기업가적 선택의 성과였다.
이 사례는 오늘날 한국 기업들이 처한 전환기의 성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 산업은 오랜 기간 ‘빠른 2인자(Fast Second)’ 전략을 통해 성장해 왔지만, 이제는 단순한 추격을 넘어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내는 기업 혁신 전략으로 옮겨가는 국면에 진입했다. 가장 직관적인 해법은 여전히 기술 혁신이며, 이는 앞으로도 중요성이 줄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TSMC 사례에서 보듯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바꿔 산업의 가치를 재정의할 수도 있다.
이와 유사한 흐름은 이미 한국 산업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는 화장품 시장에서 브랜드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제조에 특화된 전문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R&D와 생산 역량에 집중했고, 그 결과 수많은 브랜드가 의존하는 핵심 인프라로 성장했다.
결국 TSMC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술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에 무엇을 만들 것인가만큼이나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산업의 규칙을 다시 그려 보는 기업가적 상상력은 기술 혁신과 함께 한국 기업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고민해야 할 전략자산이 되고 있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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