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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족? 달라진 삶, 뒤처진 제도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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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족? 달라진 삶, 뒤처진 제도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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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석 |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인구와사회협동연구소장



지난가을쯤이었다. 제자가 찾아왔다. 청첩장을 내민다. 결혼 소식도 반갑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직접 전하러 온 게 더 기특하고 고맙다. 그 동기생도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배우자가 될 사람과 이미 함께 살고 있단다. 양가에서도 다 알고 있다고 했다. 아기는 차차 생각하겠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결혼 생각이 없는 친구들도 제법 있다고 한다. 모두 서른을 갓 넘긴 청년들이다.



가족의 풍경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서른 무렵엔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이에 맞는 역할과 과제가 있었고, 이러한 연령 규범을 많은 이들이 따랐다. 비슷한 시기에 다수가 함께 거쳐 가는 삶의 모습은 표준화된 생애 단계로 그려졌다. 이와 함께 소위 ‘정상가족’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바람직하다고 여겨온 삶의 틀과 실제로 많은 이들이 걸어온 경로가 맞물리며 그런 이름이 붙었다. ‘정상’이라는 말에는 규범과 통계, 이상과 현실이 함께 뒤섞여 있다. 문제는 이 ‘정상’이 언제든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잣대가 굳어질수록, 그 밖의 삶은 쉽게 ‘비정상’ 혹은 ‘예외’가 된다.



사람의 생애는 취업, 결혼, 출산, 은퇴 같은 사건들로 구성된다. 그때마다 삶의 자리가 바뀐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미혼에서 기혼으로 옮겨 가는 식이다. 과거에는 생애 사건들이 일정한 시점에서 예상된 순서로 이어지면서 한 사람의 삶의 과정이 그려졌다. 생애 전환의 경로는 뚜렷했고, 많은 이들이 그 궤도를 따랐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구성된 생애 단계의 ‘표준’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 어떤 전환은 생략되거나 아예 일어나지 않고, 같은 전환도 여러 방식으로 나타난다.



생애 단계의 변화는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선택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비혼은 이제 드물지 않다. 혼인신고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자녀를 두지 않겠다는 부부도 적지 않다. 어떤 이들은 결혼은 원하지 않지만 아이는 갖겠다고 한다. 결혼의 변화는 국제결혼에서도 드러난다. 한때는 특정 지역과 계층에 국한된 일로 이해되곤 했지만, 지금은 유학이나 직장, 여행 등 만남의 경로가 다양해지고 배우자들의 국적과 생활 배경도 다변화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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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끝맺는 방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 이혼은 더 이상 숨겨야 할 사건이 아니다. 특히 20년 이상 결혼생활 끝의 황혼이혼은 이제 익숙하다. 자녀 양육이 끝난 뒤, 오랜 시간 참아온 갈등과 불만을 이혼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 관계를 긴 여생 동안 더는 끌고 갈 수 없다는 결심과 두려움도 깔려 있다. 한편, 결혼 상태는 끝내지 않고도 배우자와의 관계를 조정하려는 모습들도 있다. 이른바 ‘졸혼’이다. 가족으로서의 책임은 함께 지되, 각자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길어진 결혼생활 속에서, 부부 간의 구속은 덜고 관계와 안전은 지키려는 현실적 타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각자의 선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사회는 나아가고 있다. 문제는 제도가 여전히 ‘정상가족’을 기본값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밖의 삶은 제도와 인식, 정책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많은 제도가 혼인관계를 기본 단위로 삼고, 권리와 보호를 돌봄의 현실이나 개인의 필요가 아니라 ‘혼인’이라는 법적 지위에 부착해왔다. 그래서 제도 밖의 삶은 ‘배제’ 혹은 ‘미인정’의 형태로 부딪힌다. 비혼 출산 가정은 출생신고와 가족관계 등록, 각종 수당에서 제약을 만나고, 혼인신고 없이 함께 사는 커플은 주거·건강보험·육아 정책에서 가족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이 기준은 인식과 정책에도 영향을 준다. 한부모·이혼·재혼 가정은 편견에 노출되고, 그들의 삶에는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저출생 대책 역시 결혼·출산·양육을 중심에 두면서 ‘정상가족’을 전제로 설계되기 쉽다. 지원의 자격과 단위를 혼인과 출산의 ‘표준’ 경로에 묶어두는 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책에서 반복적으로 누락된다. 삶의 다양한 경로를 반영하지 못한 정책은 효과를 내기 어렵다.



누구나 어떤 삶을 선택하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과 보호는 보장받아야 한다.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제도의 보편성을 갖추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과제다. 여전히 우리는 ‘정상가족’의 틀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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