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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하’…시인 농부의 경고 [전국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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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하’…시인 농부의 경고 [전국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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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충북시민대책위원회와 북이면 주민협의체가 2021년 6월2일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북이면 소각시설 주변 주민건강영향조사 재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충북시민대책위원회 제공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충북시민대책위원회와 북이면 주민협의체가 2021년 6월2일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북이면 소각시설 주변 주민건강영향조사 재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충북시민대책위원회 제공




오윤주 | 전국팀 선임기자



“다시 이장 선거에 출마하려 합니다. 마을이 망가지는 걸 보고만 있는 게 더 힘들어서요.”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추학1리 유민채(56)씨의 출사표다. 그는 코앞의 지방선거는 마다하고 연말께 예정된 이장 선거 출마를 일찌감치 공언했다. 2007년 귀농한 그는 2014년부터 2021년까지 7년 동안 마을 최초 여성, 최연소 이장으로 장수했다. 임기를 마치고 시인 농부로 돌아왔다.



“냇가 흐르는 물살 위로 햇살은 번들거리며 빛났다. 둘레에는 허리 굵은 미루나무 수십그루가 이파리를 반짝이며 나란히 서 있었다.” 고향을 그린 그의 시 ‘그해 여름, 뱀 무덤 앞에서’의 들머리다. 그는 “엉망진창인데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시 같은 마을을 되찾고 싶어 기꺼이 마을 리더(이장)가 또 되려 한다”고 했다.



그를 다시 소환한 것은 ‘쓰레기’다. 마을로 밀려들 수도권 생활폐기물(쓰레기)이 그의 출마 결심을 굳혔다. 이장 시절 그는 ‘전사’였다. 마을에 들어선 폐기물 소각 업체가 대규모 증설을 추진하자 주민 협의체를 꾸려 온몸으로 저항했다. 2019년 4월 환경단체, 주민 1523명과 소각 시설에 따른 주민의 건강영향조사를 환경부에 청원했다. 당시 “1999년 이후 북이면에 소각장이 들어서면서 암으로 60명(폐암 31명)이 숨졌고, 호흡기·기관지 질환자 45명이 발생했다. 소각장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조사를 진행한 환경부는 2021년 5월 “소각 시설 배출 유해 물질과 주민 암 발생 간의 역학적 관련성을 명확히 확인할 만한 과학적 근거는 제한적이다. 카드뮴 등 일부 유해 물질의 농도 수준이 높아 소각 시설 등의 지속적 조사·관리가 필요하다”는 애매한 결과를 내놨다. 재조사를 요구했고, 환경부는 2022~2023년 사이 추가 조사를 했다. 유 전 이장은 “환경부가 발표를 뭉개버려 누구도 결과를 모른다. 결국 소각 업체에 면죄부를 준 꼴이 됐다”고 했다.



청주 북부 북이면·오창읍 등은 수도권과 가까운데다, 교통 여건이 좋아 민간 폐기물 소각 업체가 줄지어 들어섰다. 다른 비수도권 민간 소각 업체 역시 입지 여건이 비슷하다.



이들 업체는 호황을 맞았다.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올해 1월1일부터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면서 수도권 ‘고객’이 잇따른다. 실제 청주 오창읍·북이면의 민간 업체 3곳은 경기 광명, 인천 강화, 서울 강남 등과 연간 9100톤 규모 생활폐기물 소각 위탁계약을 했거나 진행 중이다. 충남 천안·공주·서산, 세종, 강원 원주 등 지역 민간 소각장 또한 수도권 자치단체와 연결되고 있다.



수도권의 매립·소각 시설이 포화한 터라 수도권 쓰레기 남하는 예견됐다. 2021년 폐기물관리법 개정으로 짧지 않은 ‘골든타임’이 있었지만 중앙·지방 정부 모두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기피 시설 설치에 따른 주민 반대와 민원 부담보다 지방에 넘기는 쉬운 길을 택했다. 지금은 수도권에서 1차 대란이 일어났지만, 2030년 쓰레기 직매립 금지 조처가 전국에 적용되면 2차 대란은 확산이 불가피하다.



유 전 이장은 더 나가 ‘북이면의 전국화’를 경고했다. “수도권 쓰레기가 밀려오면 민간 소각 업체들은 배를 불리지만, 주변 환경과 주민 건강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죠. 수도권 생존을 위해 지방을 죽이는 기막힌 불평등은 결국 사람을 떠나게 합니다. 우리처럼.” 실제 북이면 인구는 2015년 말 5628명에서 지난해 말 4643명으로 985명(17.5%) 줄었다. 같은 기간 청주시 전체 인구는 84만2950명에서 4만3954명(5.2%) 늘었다.



충청권에선 수도권 쓰레기 유입이 지방선거 이슈로 급부상했다. 여야 후보·정당·자치단체 모두 ‘유입 반대’ 한목소리를 내고, 환경단체는 수도권 쓰레기 저지에 나설 참이다. 오랜만에 보는 협치다. “수도권·비수도권, 도시·시골 모두 차별 없이 고루 잘 살고 싶어요.” 유 전 이장의 바람이다.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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