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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이 올린 랩송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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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이 올린 랩송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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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미국 백악관의 엑스(X) 계정엔 랩송을 배경음으로 ‘만약 몰랐다면, 이젠 알아둬’(If you don’t know, now you know)라는 한 문장이 올라왔다. 미국의 유명 래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B.I.G)의 1994년 싱글 데뷔곡 ‘주시’(Juicy)의 한 구절이다.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 27위까지 오르며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그런데 이 게시물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국을 ‘겁쟁이’라고 하며 자신을 잡으러 오라고 연설하는 장면, 이 구절을 읊조리는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어 마두로 대통령이 미군에 납치돼 압송되는 장면이 연달아 나온다. 마지막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도열한 군인들 사이로 미소를 지으며 걸어간다. 이 구절은 루비오 장관이 지난 3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트럼프 별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 침공 기자회견에서 했던 발언 중 한 대목이다. 루비오는 평소 랩 애호가로 알려져 있는데, 백악관이 이를 알고 랩송을 배경음으로 넣은 것으로 보인다.



루비오는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행동하는 대통령”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세상 사람들이 그걸 깨닫지 못한 게 이해가 안 된다. 만약 몰랐다면, 이제는 알아둬야 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이 이렇게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베네수엘라 침공은 남의 나라 영토와 주권을 침탈한 명백한 침략범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법 준수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대통령이 불법적인 행동에 나설 경우 외교를 책임지는 국무장관은 이를 견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루비오는 그런 책임을 다하기보다는 트럼프의 군사 모험주의에 덩달아 춤을 췄다. 이날 회견장에서 앞서 발언대에 오른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까불면 죽는다’(FAFO)는 막말을 하며 미국에 대들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 경고했다. 헤그세스는 트럼프에 절대 복종하는 인물이니 그렇다 치고, 정통 보수 정치인으로 평가받아온 루비오마저 이렇게 충성 경쟁을 하니 미국 외교가 더이상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루비오는 회견 마지막에 “이번 사건은 전세계를 향한 분명한 메시지”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한 장난치지 말라. 그렇게 하면 결말이 좋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남의 나라 침공을 랩송 즐기듯 하는 태도도 경악할 노릇이지만, 그게 세계에 주는 미국의 협박 메시지임이 분명해 오싹해진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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