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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변화의 시작, 쿠팡 디톡스

헤럴드경제 정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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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변화의 시작, 쿠팡 디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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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스마트TV로 쿠팡플레이에 접속했더니 계정이 사라졌다. 결제를 맡았던 형제 중 하나가 멤버십을 해지한 모양이다.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새벽 출근길 공동주택 현관에 요새처럼 쌓여 있던 로켓프레시백도, 퇴근길 발에 치이던 앞집의 로켓배송 상자도 예전보다 뜸해졌다. 지인들에게 ‘탈팡(쿠팡 탈퇴)’ 여부를 묻는 안부는 일상이 됐다. 아내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이커머스 앱들이 늘었다. 이른바 ‘쿠팡 디톡스’의 단면이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진 만큼, 쿠팡에 입점한 셀러(판매자)들도 시야를 넓혔다. 현장의 전언에 따르면, 입점 업체들은 쿠팡의 매출 비중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경쟁 플랫폼으로 판매처를 다변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관리 효율은 떨어지겠지만, 특정 플랫폼에 종속돼 매출이 감소하는 리스크를 무작정 감수할 수 없어서다. ‘쿠팡 판매량이 전월 대비 절반 가까이 꺾였다’는 목소리는 더 이상 엄살이 아닌 생존의 비명이다.

쿠팡은 압도적 물류망과 편의성을 무기로 이커머스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 왔다. 일각에선 유통산업발전법이 쿠팡만 성장하는 배경이 됐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쿠팡의 성장이 곧 생태계의 고사로 이어지는 독점적 구조는 이제 수명을 다한 시대적 산물로 봐야 한다. 가치소비(가격)와 배송 속도(물류)라는 이커머스의 본질에서 쿠팡이 이룬 성취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그 견고했던 성벽에 균열을 냈다.

기울어졌던 운동장은 바뀔 수 있을까. 정부는 쿠팡 사태와 관련해 대응 수위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했다. 영업정지와 조(兆) 단위 과징금이라는 전례 없는 압박도 현실화되고 있다. 초기 대응 과정에서 보여준 쿠팡의 태도는 국민적 공분을 샀다. 미국 상장사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 의무를 따지며 ‘민감 정보가 아니기에 공시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던 태도 역시 정서적 마지노선을 넘어섰다.

‘외국 기업이라서’라는 변명은 글로벌 기업의 사례 앞에서 무색하다. 2019년 페이스북(現 메타)은 이용자 정보 유출 사건으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5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받았다. 유럽의 T-모바일 역시 보안 사고 발생 시 규제 당국보다 먼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선제적 투명성(Proactive Transparency)’ 전략을 취했다. 쿠팡이 보인 폐쇄적 태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꼭 쿠팡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진행형이다. 쿠팡이 뒤늦게 책임을 시각화하더라도, 앱 설치가 늘었다고 해도 시장 점유율은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 소비자들이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는 ‘멀티 호밍(Multi-homing)’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독점적 지위를 지탱하던 락인(Lock-in) 효과도 희미해지고 있다.


쿠팡은 사태를 수습할 골든타임을 놓쳤다. 유통업계의 모든 성장을 집어삼키던 거대한 ‘블랙홀’은, 이제 스스로가 초래한 논란과 불신을 빨아들이는 또 다른 의미의 블랙홀이 됐다. 경쟁사들은 각자의 강점을 살려 소비자를 붙잡고 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처럼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다. 독점의 마침표와 경쟁의 쉼표가 교차하는 새로운 지점에서, 유통업계의 투명한 성장판이 열리길 바라본다.

정찬수 소비자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