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
2026년 1월 22일,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 AI 기본법 시행 국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유럽연합(EU)이 한국보다 앞서 법안을 발표했지만, 일부 국가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올해 8월로 시행 시기를 늦췄다. 그래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AI 산업에 대한 제도적 규제와 진흥을 동시에 시작하는 국가가 된 것이다. 이는 AI 기술의 속도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다는 위기감과 동시에 표준을 선점하겠다는 국가적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우리나라의 AI 기본법과 EU AI법(AI Act)는 모두 AI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을 공유하지만, 한국의 AI 기본법은 기업이 AI를 잘 만들고 안전하게 쓰도록 돕는 '가이드라인형 지원법'에 가깝고, EU AI Act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명확히 긋고 어기면 막대한 책임을 묻는 '강력한 규제법'이라 볼 수 있다.
AI 기본법의 정식 명칭은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다. 주요 핵심 내용은 '고영향 AI(High-Impact AI)' 규제, 생성형 AI의 '워터마크 의무화', AI 산업 '진흥과 안전'의 조화다. 생명, 신체 안전 및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AI를 고영향 AI로 정의하고, 해당 사업자에게 위험 관리 및 이용자 보호 의무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AI가 생성한 결과물에는 반드시 AI 생성물임을 알리는 표시(워터마크)를 하도록 규정하여 정보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아울러 AI 산업 육성을 위한 기술 개발 및 스타트업 지원책과 함께, AI 안전연구소 설립 및 국가AI위원회 운영의 법적 근거가 포함됐다.
법 시행 초기에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과태료 부과 및 사실 조사 등에 대하여 최소 1년 이상의 계도 기간을 가질 예정이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업들이 스스로 고영향 AI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맞춤형 컨설팅을 지원할 예정이다. 규제 대상은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해외 사업자에게도 적용되며, 국내 대리인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투명성 및 안전성 확보 의무, 이용자 고지 의무가 포함되며,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AI 기본법의 취지는 명확하다. AI가 이미 인간의 삶에 깊숙이 들어온 만큼, 그 부작용을 예방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AI를 일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도에 따라, 크게 고영향 AI, 생성형 AI, 고성능 AI 등 세 가지로 분류하여 차별화된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AI가 환자의 암 여부를 진단하거나, 은행에서 대출 가능 여부를 AI가 결정하고, 기업이 면접 점수를 AI로 매기는 경우처럼 개인의 생명이나 경제적 기본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영향 AI는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를 작성하고 보관하도록 했다. 사람의 기본권에 대한 '영향 평가'도 받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제미나이나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경우에는 AI가 만든 결과물에 반드시 'AI 제작물'임을 표시하는 워터마크 등의 투명성 의무를 부여했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딥페이크 가짜 뉴스나 정교하게 조작된 보이스 피싱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 사회적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막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는 고성능 AI는 그 파급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설계 단계부터 위험 관리 체계를 갖추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러한 법제화는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내가 사용하는 AI 서비스를 믿어도 되는가'라는 의문에 국가가 보증을 서는 격이기에 시장의 신뢰도를 높여 산업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의도와 달리 AI 기본법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규제가 너무 느슨해서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로 인해 성장을 저해한다'는 우려로 양분되고 있다. '혁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국민의 안전도 보장하겠다'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결국 누군가에게는 '알맹이 없는 진흥법'으로, 누군가에게는 '잠재적인 족쇄'로 인식되면서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여러 비판이 제기되지만, 산업계의 가장 큰 지적은 AI 기본법의 규제적 성격과 '기준의 모호성'이다. 고영향 AI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안전성 입증을 위해 기업이 제출해야 할 구체적인 데이터가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업비밀 침해 우려도 커지고 있으며, 단순 자동화 프로그램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시민 단체에서는 오히려 AI 기본법이 산업 진흥에만 편향됐으며, 인권과 정보 보안에 대해선 도외시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AI의 영향을 받게 될 구직자, 노동자,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발언을 하거나 참여할 기회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AI의 안전성 확보 의무 적용 대상을 더 넓게 규제하고, 공개된 AI 기본법의 시행령도 인권 보호 관점에서 대폭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EU나 미국이 산업 현실을 반영해 시행 시기를 늦추거나 규제 수위를 조절하는 '속도 조절'에 나선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라는 기록에만 매몰되어 성급하게 시행한다는 냉소적 반응도 만만치 않다. 특히 속도전 양상으로 치달은 이번 입법이 글로벌 규제 샌드박스의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높고, 글로벌 스탠더드와 괴리될 경우 국내 기업들은 갈라파고스식 규제에 갇힐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한편 스타트업과 혁신 생태계 입장에서는 이 법이 기회보다는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올 가능성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현재 국내 AI 스타트업의 98%가 법적 대응 준비가 전무하다는 통계가 현장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얼마 전 공개한 'AI 기본법과 스타트업' 보고서에 따르면, 스타트업 101개사 가운데 단 2개사만이 'AI 기본법 대응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대기업은 대규모 법무팀을 동원해 규제에 대응할 수 있지만, 기술 개발에만 매진해도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에게 복잡한 컴플라이언스(준법 감시) 의무는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벤처캐피털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켜 스타트업의 자금난을 심화시키고, 생존을 위협하게 된다. 또한 규제 대응 비용이 증가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고사할 위험이 있으며 이는 국가 전체의 혁신 역량 저하로 이어진다.
정부는 AI 기본법이 규제 중심의 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1년의 계도 기간을 두고 규제보다는 지원에 힘쓰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녹여내지 못한 채 너무 성급하게 닻을 올렸다는 평가다. 과거 5G 상용화 당시, 세계 최초 타이틀에만 집착하다 정작 품질 논란과 소비자 불만을 초래했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법 시행 이후에도 실제 현장에서 어떤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지 면밀히 살피고 수정과 보완을 통해 규제의 범위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세밀한 행정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장이 납득하고 산업 발전을 가로막지 않는 실질적인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AI 기본법 자체를 반대하긴 어렵다. 다만 현장에서 들리는 걱정은 '존재'가 아니라 '속도와 방식'이다. 결국 AI 기본법이 혁신의 마중물이 될 것인지, 아니면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인지는 법 자체가 아니라, 그 법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역동성을 얼마나 보호하고 진흥책을 실질적으로 체감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술은 법보다 멀리 가고 속도는 법보다 빠르기에, 굳어진 규제로 혁신의 싹을 자르기보다 신뢰라는 토양 위에서 창의성이 마음껏 꽃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통하고 보완해 나가는 유연한 거버넌스가 절실한 시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을 통제하려는 욕심보다 기업들이 안심하고 도전할 수 있는 세밀한 안전망과 지속적인 소통이다.
AI 기본법이 남겨야 할 것은 '세계 최초'라는 훈장이 아니라, 한국 기업을 '세계 최고'로 밀어 올릴 가장 단단하고 정교한 디딤돌이어야 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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