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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제재로 경제난, 하마스 돕다 재정난… 나라가 나락에 빠져

조선일보 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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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제재로 경제난, 하마스 돕다 재정난… 나라가 나락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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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反정부 시위]
경제난과 물가 폭등에 따른 이란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3주째로 접어든 12일 비공식 환율은 1달러당 145만6000리알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같은 날(82만3500리알)과 비교하면 1년 만에 리알화 가치가 40% 넘게 급락한 것이다.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연평균 15% 하락)와 비교해도 이례적인 수준이다.

현지에선 “빵 한 덩이 사려면 뭉칫돈을 들고 가야 한다” “지폐 찍는 비용이 액면가보다 더 많이 든다” “평생 저축한 돈이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다. 고환율·고물가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1979년 구축된 신정 체제가 47년 만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정부 안에서도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시위는 지난해 말 수도 테헤란의 전통 시장 ‘그랜드 바자르’ 상인들이 경제난에 항의해 가게 문을 닫고 거리로 나서면서 시작됐다. 정부가 지난 5일 1인당 월 1000만 리알(약 7.7달러)을 지급하는 ‘경기 부양책’을 내놨다가 오히려 성난 민심에 불을 댕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달 최소 200달러를 웃도는 기본 생활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석유 부국(富國) 이란 경제를 옥죈 핵심 요인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장기적 경제 제재가 지목된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을 통해 신정 일치 체제를 구축하고 본격적인 반미(反美) 노선으로 선회하면서 국제 금융·통상에서 고립됐다. 2015년 이란이 서방과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를 맺으면서 제재 완화와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실제로 2016년 1월 달러당 약 3만5000리알 수준이었던 환율이 2018년 미 트럼프 1기 행정부가 JCPOA를 파기할 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란이 동결·완화했던 핵 프로그램을 재가동하면서 경제는 다시 얼어붙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악화는 결정타가 됐다. 202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란은 하마스를 비롯해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까지 이른바 ‘저항의 축’ 세력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군사·재정적 부담이 누적돼 국가 경제가 급격히 위축됐다. 지난해 6월 미국이 이란 본토의 핵 시설을 직접 타격하면서, 취약한 경제가 붕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이 국제 제재와 체제의 무능으로 국가 기능이 무너진 이슬람권 국가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990년대 유엔 제재로 국가 경제가 붕괴한 이라크, 장기 제재와 내전으로 체제가 붕괴한 리비아가 대표적이다. 반면 저항의 축 일원이었던 시리아는 2024년 12월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이 무너진 뒤 친미 노선으로 전환, 국제사회 복귀를 모색하고 있어 대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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