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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속 ‘광장’서도 인류애는 피어난다

조선일보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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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속 ‘광장’서도 인류애는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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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개봉하는 ‘애니계 칸’ 수상작
최인훈 소설에서 주인공 이름 따와
소설가 최인훈은 ‘광장’의 서문에서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며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고 썼다. 최인훈의 소설과 느슨하게 연결된 2026년의 애니메이션 ‘광장’은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또 하나의 광장으로 향하는 골목을 보여준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15일 개봉하는 ‘광장’은 김보솔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이자 장편 데뷔작이다. ‘애니메이션계의 칸 영화제’라 불리는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콩트르샹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프랑스에서 극장 개봉을 확정하는 등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영화는 북한을 배경으로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의 1등 서기관 보리와 교통보안원 복주, 그리고 두 사람을 불안하게 지켜보는 통역관 명준의 이야기를 그린다. 금발에 파란 눈의 외국인 보리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고립돼 있고, 복주는 그런 보리에게 유일한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복주가 말없이 사라지고, 보리는 명준에게 도움을 청한다. 명준은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에 빠진다.

김 감독은 2016년 실제 북한에서 3년간 근무하고 귀국한 스웨덴 외교관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이야기를 떠올렸다. “북한에서의 생활이 어땠냐”는 질문에, 외교관은 “너무 외로웠다”고 답했다. 정권의 감시와 통제로 인해 같이 일하는 직원과 맥주 한 잔도 나눌 수 없었다는 것.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는 것뿐이었다고 했다.

영화 전반에는 세 인물의 외로움이 짙게 깔려 있다. 전부 똑같이 생긴 회색 건물, 흩날리는 눈발, 텅 빈 광장의 풍경은 이들이 느낄 막막한 외로움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거대한 건물 속에서 작은 점처럼 개인을 묘사하는 장면들도 긴 여운을 남긴다. 차갑게 얼어붙은 사회에서도 끝내 피어나는 사랑을 통해, 인류 보편의 감정을 따뜻하게 그린다.

제작 기간은 5년 11개월에 달한다. 북한 관련 서적과 자료를 조사하고, 탈북민 인터뷰로 교차 검증을 거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우리가 갈 수 없는 곳, 상상조차 어려운 공간을 무대로 삼아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강점을 활용했다.

보위부 요원이자 통역관인 이명준의 이름은 소설 ‘광장’의 주인공에서 따왔다. 보리와 복주의 로맨스가 중심에 있지만, 그 주변을 서성이는 명준에게서도 깊은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 김보솔 감독은 “풍문과 이념의 굴레에 머무르지 않고, 진리를 찾으려는 용감한 주인공 ‘명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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