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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다시 환율 1470원 육박, 이게 한국 경제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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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다시 환율 1470원 육박, 이게 한국 경제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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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증시 표시가 나오고 있다. /뉴스1

12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증시 표시가 나오고 있다. /뉴스1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0.8원 오른 1,468.4원으로 마감했다. 지난해 연말 정부 당국이 구두 개입과 함께 대규모 원화 매입(달러 매도)으로 1430원대까지 끌어내렸지만 최근 8거래일 연속 다시 상승하면서 개입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인위적 조정 효과가 보름도 못 갔다. 그 와중에도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첫 4600선을 돌파하는 등 주가는 연일 상승세다. 외환시장에선 경고음이 계속 울리는데, 증시는 축포를 쏘는 엇갈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주식 호황은 우리 경제 전체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경제는 저성장과 내수 침체에 허덕이는데 주가는 몇몇 대형주에 의존한 극단적 쏠림의 결과로 상승하고 있다. 올 들어 주가지수 상승분의 88%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두 종목에서 나왔다. 같은 기간 전체 종목의 80%가 넘는 750여 종목은 주가가 오히려 하락하거나 횡보하고 있다. 기업 10개 중 8개가 코스피 호황과는 딴 세상인 것이다.

자본 이탈도 예사롭지 않다. 올 들어 9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19억4200만달러(약 2조8300억원)로, 연초 같은 기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거래일 일주일의 매수액이 작년 말 한 달 전체 순매수액을 넘어섰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국내 주식은 오로지 반도체뿐”이고 “미국 시장이 더 유망하다”는 인식이 상식처럼 굳어지고 있다.

환율은 한 국가의 경제 실력을 반영하는 정직한 거울이라고 한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주요 64개국 중 원화의 추락 속도는 6위로 빨랐고, 최근 두 달 동안 원화의 진짜 구매력을 나타내는 환율 지수에선 64개국 중 63위였다. 외환 시장이 원화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이유는 복합적일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반도체 하나밖에 안 보이는데 다른 신산업을 발전시킬 정치 사회적 동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포퓰리즘과 노조 일변도가 결합하면 신산업이 숨 쉴 공간이 없어진다.

정부는 코스피 호황과 수출 호조에 안주하기보다는 원화 추락이 보여주는 우리 경제의 실상에 주목하고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들이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마음껏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규제 사슬을 끊고, 노동·교육 개혁을 통해 경제의 근본 체력을 보강하는 일이다. 자본이 탈출하고 화폐 가치가 추락하는 경제는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다. 환율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해선 안 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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