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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뜨겁다”…美 회사채 발행 138조원 ‘폭주’

헤럴드경제 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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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뜨겁다”…美 회사채 발행 138조원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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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팬데믹 이후 최대 주간 발행”…성장·유동성 배팅
“시장, 베네수엘라 사태 대수롭지 않게 생각”
저금리·현금 풍부한 투자자 우량채 몰려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월가에 있는 뉴욕 증권 거래소 [연합]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월가에 있는 뉴욕 증권 거래소 [연합]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 기업들이 인공지능(AI) 투자와 인수합병(M&A) 자금 마련에 나서며 새해 첫 주부터 회사채 시장에 대거 몰렸다. 투자 등급 회사채 발행 규모가 주간 기준 950억달러(138조 5385억원)에 달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활발한 한 주를 기록했다. 기업들이 금리 인하 사이클 진입 이전의 비교적 낮은 차입 비용을 ‘확정’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시간) 미국 기업들이 올해 1월 첫째 주에만 투자 등급 회사채 55건을 발행해 950억달러 이상을 조달했다고 전했다. 이는 2020년 5월 이후 주간 기준 최대 규모이자, 기록상 가장 강력한 연초 출발로 평가된다. 통상 1월은 연초 효과로 발행이 늘어나는 시기지만, 올해는 발행 속도와 규모 모두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런던증권거래소 그룹(LSEG) 데이터에 따르면 이번 발행 급증은 월가가 예상하는 AI 투자 확대와 대형 M&A 자금 수요에 대비해 기업들이 평소보다 앞당겨 자금 조달에 나선 결과다. 특히 대형 기술 기업을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라우드 인프라 등 AI 관련 설비 투자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선제적으로 자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금융회사와 유럽 기업들이 주요 발행 주체로 참여한 것도 특징이다.

테디 호지슨 모건스탠리의 투자 등급 채권 자본시장 부문 글로벌 공동 책임자는 “모두가 시장으로 복귀하기를 매우 간절히 바라고 있다”며 “올해는 대형 기술 기업의 AI 인프라 투자와 인수합병 자금 조달을 감안해 기업들이 이례적으로 이른 시점부터 발행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향후 발행 물량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기업들로 하여금 서둘러 시장에 나오게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투자 등급 회사채 발행 규모가 2조2500억달러에 달해 2020년 기록인 1조9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금리 인하 사이클에 대한 기대와 맞물려, 기업들이 현재의 차입 비용을 고정하려는 수요가 집중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발행 시장에서는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돌았다. 프랑스 통신사 오렌지는 5개 트랜치 발행을 통해 340억달러가 넘는 청약 주문을 확보하며 60억달러를 조달했다. 일본의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과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도 각각 50억달러와 45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다수의 발행 건에서 주문이 발행액의 수 배에 달하는 초과 청약이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연초 채권 발행이 급증했음에도 시장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체포라는 지정학적 변수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ICE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따르면 투자 등급 회사채의 차입 비용은 국채 대비 0.79%포인트 높은 수준에 그치며, 투자자들이 위험 프리미엄을 거의 요구하지 않고 있다. 이는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기업 실적과 유동성 여건을 더 중시하는 시장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US뱅코프의 투자 등급 채권 자본시장 및 신디케이트 책임자인 카일 스테게마이어는 “시장은 현금이 풍부하고 투자 등급 채권의 펀더멘털이 여전히 견고하다고 보고 있다”며 “베네수엘라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부채 상환 능력과 실적 전망이 뒷받침되는 한, 투자자 수요는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미국 우량 채권 발행 기업들의 수익이 2025년 4분기에 11.2%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보험사와 연기금도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비해 장기 수익률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투자 등급 채권 신디케이트 책임자인 존 세일즈는 “보험과 연금 상품 판매가 지속되는 한 고등급 채권 시장으로 유입되는 자본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사채 발행 러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여전히 위험 회피보다 성장과 유동성에 베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중 갈등, 중동 및 중남미 정세 불안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자금이 미국 우량 회사채로 몰리고 있다는 점에서 달러 자산 선호가 재확인됐다는 평가다. 이는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신흥국 주식·채권 시장으로 향할 수 있는 자금이 미국에 머물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신용시장 과열에 대한 경계도 동시에 제기된다. 발행 물량이 급증하는 가운데 회사채와 국채 간 스프레드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까지 압축되면서, 향후 금리 경로 변화나 시장 변동성 확대 시 조정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닐 선 RBC 블루베이 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발행이 너무 많아지면 투자자 피로감이 커질 수 있다”며 “더 넓은 신용 스프레드 구간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현금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