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머니투데이 언론사 이미지

[청계광장]한중정상회담의 두 동물, 사자와 기린

머니투데이 이태희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원문보기

[청계광장]한중정상회담의 두 동물, 사자와 기린

속보
이준석 "국힘, 공천비리·통일교·대장동 항소포기 특검 추진하자"
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근육과 골격이 뒤엉켜 각별한 자태와 남다른 생김새를 가졌으니 넓은 가슴, 곧은 꼬리, 거친 갈퀴와 부드러운 털, 갈고리 같은 손톱에 톱날 같은 이빨, 칼끝을 감추고 날카로움을 숨긴 채 귀를 늘어뜨리고 느긋한 걸음으로 틈을 엿보며 기회를 노린다.'

627년 4월 중국 당나라의 태종은 강국(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으로부터 사자를 선물받았다. 서역의 사신이 사자를 가져온 것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중국에선 번식하지 못한 까닭에 중국인들은 이 경이로운 동물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태종은 당대의 문장가였던 우세남을 불러 사자를 보여주고 '사자부'(獅子賦)를 짓게 했다. 위의 글은 그 일부다.

처음에 사자는 '산예'로 불렸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싱하'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널리 사용하는 명칭인 사자는 토하라A어 '시색'(sisak)의 음을 옮긴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스승 사'(師)를 써서 '사자'(師子)라고 했다. 사자를 뜻하는 한자 '사'(獅)는 나중에야 나왔다. 이 역시 사자가 인도 또는 중앙아시아로부터 중국에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근대 동물원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자를 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우세남의 '사자부'나 불교 도상으로 사자를 접했고 여기에 상상을 더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협력해 곧 중국으로 돌아갈 간송미술관의 석사자상 역시 그 산물의 하나다. 명청시대 왕궁과 관청, 사찰, 고관대작의 저택 출입구에는 각기 위계에 맞는 석사자상을 놓았다. 문을 지키는 석사자상은 대개 암수 한 쌍을 배치하는데 왼쪽에는 수사자를, 오른쪽에는 암사자를 놓는다. 수사자는 오른쪽 앞발로 수놓은 공, 수구(繡球)를 굴리고 암사자는 왼쪽 앞발로 누워 있는 새끼를 어루만지는데 각기 위엄과 자손 번창을 상징한다. 문 앞에 사자를 둔 것은 벽사의 의미가 컸지만 한편으로 '석사'(石獅)와 '실사'(實思)가 발음이 같아 출입문을 오갈 때마다 이 집안(나라)을 어떻게 이룬 건지 깊이 돌아보라는 뜻도 있었다.

사자와 반대로 상상 속 동물이 실제 동물의 이름이 된 예도 있다. 바로 기린이다. 기린은 수컷을 가리키는 '기'(麒)와 암컷을 가리키는 '린'(麟)이 합쳐져 이뤄진 단어다. 수컷이 울면 성인의 출현을, 암컷이 울면 우호를 가져오며 봄에 울면 아이를 돌보고 가을에 울면 백성을 기른다. 정기를 모았다가 왕도(王道)에 부합하면 비로소 나타난다. 생김새는 사향노루 같고 꼬리는 소처럼 생겼으며 다리는 말과 같고 발굽은 둥글다. 용이 그렇듯 여러 동물의 모습을 합쳐 만든 것이다.

유교경전 '대대례'(大戴禮)에서 털 달린 짐승 360종 가운데 으뜸이라고 했다. 치세에나 나는 동물로 공자는 기린이 잡힌 것을 보고 자신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한탄했다. 사람들은 태평성대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여러 곳에 기린을 새겼다. 지난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기린도'를 선물했다.


1414년 명나라의 황제 영락제는 방갈라국(榜葛剌國·오늘날 방글라데시)으로부터 신기한 동물을 선물받았다. 처음 보는 이 동물의 이름을 묻자 그들은 '게리'(geri)라고 답했다. 기린과 발음이 흡사한 데다 또한 영락제의 치세였던 까닭에 사람들은 고전 속의 기린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를 기념해 '서응기린도'(瑞應麒麟圖)란 그림을 남겼다. 그림 속 글은 기린을 묘사하기를 '문양은 찬란하고, 검은 구름과 자줏빛 안개가 둘러싸듯 신비로우며, 발은 땅의 생물을 해치지 않고, 좋은 땅만 가려 걷습니다'라고 했다.

기린은 이렇게 상상의 동물에서 실재하는 동물이 됐다. 중국에서는 기린 대신 '장경록'(長頸鹿)이라고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사고의 흐름은 달랐지만 두 동물 모두 길상의 의미를 담았다. 올 한 해 세상 모두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한다.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