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와 경제난으로 촉발된 이란의 반(反)정부 시위가 보름째 확산하는 가운데 당국이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해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규모 공습’을 포함하는 다양한 군사 개입 방안을 보고받고 최종 결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시위 초반부터 “평화 시위대를 잔혹하게 살해한다면 그들을 구하러 나설 것”이라며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는데, 미 정부가 이를 실제로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공격 승인 고려 중”
트럼프는 시위 초반부터 “평화 시위대를 잔혹하게 살해한다면 그들을 구하러 나설 것”이라며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는데, 미 정부가 이를 실제로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공격 승인 고려 중”
월스트리트저널은 10일 트럼프의 발언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경우에 대비해 미국 정부가 예비 단계의 이란 공격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대규모 공습도 선택지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는 “이란 당국에 대한 공격 승인을 트럼프가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며 수도 테헤란의 비(非)군사 시설 공격을 포함한 다양한 옵션에 대한 브리핑을 트럼프가 청취했다고 보도했다.
AP 연합뉴스테헤란에선…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돌아오라 팔레비 왕세자” 지난 9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복면을 쓴 반정부 시위 참가자가 옛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왕세자’ 레자 팔레비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시위 현장에는 “팔레비가 돌아올 것이다” “레자 샤(국왕), 신이 당신의 영혼을 축복하길” 등 팔레비 왕조를 그리워하는 구호가 등장했다. |
트럼프는 이날 소셜미디어에서 “이란은 아마도 그 어느 때보다 자유를 목전에 두고 있다”며 “미국은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전날엔 취재진에게 “이란의 아픈 곳을 아주 세게 때릴 것”이라고도 했다. 이란은 “미국이 공격한다면 이스라엘과 미군 기지를 ‘정당한 목표물’로 삼아 보복하겠다”는 입장이다.
청년층이 주축이 된 시위가 이슬람 신정 체제의 억압에 항의하는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번지면서, 이란 당국은 지난 8일부터 국제전화와 인터넷을 모두 차단하고 무력 진압에 주력하고 있다. 통신 차단 이후 사망자가 급증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비영리 단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이 추산한 사망자 숫자는 9일 65명에서 10일 116명으로 크게 늘었다. 영국·미국에 거점을 둔 페르시아어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가장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9~10일 이틀간 최소 200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AP 연합뉴스베를린에선… “이란에 자유를” 시위 지지 집회 지난 1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이란 시위 지지 집회에서 한 남성이 ‘이란에 자유를’이라고 적힌 천을 들고 있다. 유럽연합(EU) 주요 국가에서도 무력 진압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국제사회는 “유혈 진압이 도를 넘었다”고 우려하고 있다. 테헤란의 한 병원 의료진은 영국 BBC에 “젊은이들이 머리와 심장에 총탄을 맞았다”고 했다. 병원에 몰려드는 부상자가 너무 많아 심폐소생술을 할 시간조차 없고, 병원과 창고 곳곳에 시신이 수십~수백 구씩 쌓여 방치되는 상황이라는 보도까지 나온다. 한 시위 참가자는 프랑스 르몽드에 “최루탄이 사방에서 터졌고 실탄이 빗발쳤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남자가 다리에 총을 맞는 장면을 봤다”고 했다. HRANA는 “사망자 대부분이 근거리에서 실탄이나 고무탄에 맞았다”고 했다. 당국이 조준 사격으로 시위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정 체제 위기… ‘연착륙’ 전망도
전문가들은 1979년 팔레비 왕조 축출 이후 47년 동안 신정 체제를 유지해온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다고 분석한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은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샤(국왕) 만세’ 같은 구호가 전면에 부상한 양상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며 “중산층·부유층도 시위에 광범위하게 가담하고 있다”고 했다.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 사용권을 구매한 부자들이 시위 참상을 해외에 알리고 있다고 한다.
다만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해도 신정 체제 종식과 왕정복고 등 ‘레짐 체인지’가 당장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팔레비 왕조 지지 구호가 나오는 데 대해 “현 체제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선택된 측면이 있다”면서 “기본적으로 이란에선 왕가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고 했다. 그는 “체제 수장인 하메네이만 제거하고 헌법을 대폭 손질하면서 이슬람 공화국 체제 자체는 존속시키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유달승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도 “아직까지는 체제의 지지 기반이 완전히 붕괴되진 않았고, 뚜렷한 대안 세력이 없다”며 “하메네이 퇴진 후 집단 지도 체제를 도입하거나 최고 지도자를 국민 직선제로 선출하는 등, 상당한 개혁 수준으로 연착륙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청년층에서 ‘마지막 왕세자’ 레자 팔레비(65)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이슬람 혁명 이전의 자유분방했던 분위기에 대한 동경이 커지는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팔레비가 시위 구심점으로 급부상하는 상황에 대해 “많은 이란인은 세속적인 팔레비가 현 정권과는 달리 서방 친화적이고 경제적 고립을 끝낼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본다”고 했다.
중도·개혁 성향으로 평가받았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마저 11일 시위대를 ‘소수의 폭도’로 지칭하고 강경 진압을 예고하면서, 현 체제에 대한 저항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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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원선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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