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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감각 강렬하게 흔드는 ‘소리’…공간의 울림을 만나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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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감각 강렬하게 흔드는 ‘소리’…공간의 울림을 만나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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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과학의 미래
소리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감각을 가장 강렬하게 뒤흔드는 예술의 재료다. 소리는 정지돼 있지 않으며, 시간을 따라 움직이는 운동이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칠 때 나는 사각거림과 도시의 혼잡한 교차로에서 들리는 경적, 고요한 숲속에서 나타나는 새의 지저귐까지, 소리는 공간과 얽히며 우리의 경험을 형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 소리 예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간 소리 예술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소리가 공간과 서로 작용하며 만들어내는 경험을 탐구한다.

소리와 공간의 관계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고대 이집트 신전에서는 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건축 구조를 설계했고, 사제들의 주문은 신전의 벽을 통해 메아리치며 신성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는 공간 내부의 여러 반사로 인해 소리의 음색이 풍부하게 바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높은 천장을 가진 고딕 양식의 중세 유럽 성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울려 퍼지면서 신자들에게 영적인 몰입을 선사했다. 이 시기의 음악은 공간 자체를 예배의 일부로 만들었다. 소리는 벽과 천장을 타고 흐르며 공간을 채웠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신과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19세기 말,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의 소리가 급격히 변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기차와 같은 각종 기계가 내는 소리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고, 루이지 루솔로 같은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도시 소음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다. 그는 1913년 ‘소음의 예술’ 선언문을 통해 도시 소음을 음악의 재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세기에는 공간 소리 예술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전자음악의 등장과 기술 발전으로 소리를 공간에 배치하고 조작하는 새로운 방식이 가능해졌다.


독일 작곡가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은 다채널 스피커를 사용해 소리가 공간을 이동하는 효과를 만들었고, 프랑스의 피에르 셰퍼는 기차와 물방울 등에서 나는 일상 속 소리를 녹음해 재구성하며 소리가 공간과 맥락을 가진 예술적 경험임을 강조했다.

특히 존 케이지의 ‘4분33초’는 소리와 공간의 관계를 재정의했다. 이 작품은 연주자가 4분33초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침묵의 공연이다. 하지만 이 침묵은 공백이 아니다. 공연 공간에서 들리는 청중의 숨소리, 의자의 삐걱거림, 바람 소리 등을 모두 예술로 만들었다. 케이지는 소리가 공간과 분리될 수 없으며, 공간 자체가 소리의 일부라고 봤다.

영국 예술가 수잔 필립스는 공공 공간에서 소리를 활용해 감정을 자극하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필립스의 2010년 작품 ‘로랜즈(Lowlands)’는 스코틀랜드 민요를 녹음한 그녀의 목소리를 글래스고의 다리 아래에서 재생한다. 다리의 아치형 구조는 소리를 증폭시키고 메아리치게 하며, 지나가는 사람은 일상 공간에서 예기치 않은 감정적 경험을 마주한다. 오늘날 공간 소리 예술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을 이용해 소리를 공간에 더 정교하게 배치할 수 있게 한다.


공간 소리 예술은 소리가 공간과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는 예술이다. 그것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기술과 상상력을 통해 진화해왔다. 공간 소리 예술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 소리는 어떤 공간에서 울리고 있는가?”라고 말이다.

길을 걷거나 카페에 앉아 있을 때, 잠시 멈춰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그곳에서 당신만의 예술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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