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프랑스 첫 좌파 집권 대통령 미테랑 “북한과는 수교 안 한다”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원문보기

프랑스 첫 좌파 집권 대통령 미테랑 “북한과는 수교 안 한다”

서울맑음 / -3.9 °
[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96년 1월 8일 80세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1983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1983년.


1981년 5월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 후보가 당선했다. 대선 세 번째 도전에서 꿈을 이뤘다. 1차 투표에서 25.8% 득표로 2위였지만 결선 투표에서 51.7%를 얻어 지스카르 데스탱 현직 대통령에게 역전승했다. 1958년 5공화국 헌법 제정 이후 첫 좌파의 집권이었다.

한국에서는 예상 밖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조선일보가 5회 연재한 관련 시리즈 제목은 ‘미테랑 충격’이었다. 프랑스가 북한과 가까워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전문가 좌담 기사 제목은 ‘막 내린 ‘보수 프랑스’… 미테랑 외교와 한반도’ ‘북괴(북한)의 접근 예상… 다각 대책 필요’(1981년 5월 12일 자 3면)였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당선. 1981년 5월 12일자 1면.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당선. 1981년 5월 12일자 1면.


프랑스가 소련·북한과 친밀해질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미테랑은 취임 두 달 후 서독 언론 인터뷰에서 “서방은 소련과 군축 협상을 벌이기 앞서 핵무기를 증강해야 한다”면서 “소련의 군사 우위를 용납할 수 없으며 균형 회복을 위해 재무장이 이뤄져야 한다”(1981년 7월 8일 자 4면)고 초강경 입장을 밝혔다. 소련은 “동서 무기 경쟁을 소련에 책임을 전가한다”며 미테랑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1981년 8월 1일 자 4면)

미테랑 초강경 선언. 1981년 7월 8일자 4면.

미테랑 초강경 선언. 1981년 7월 8일자 4면.


미테랑 정부는 북한과도 거리를 두었다. 셰이송 프랑스 외무장관은 1982년 2월 22일 프랑스를 방문한 노신영 외무장관에게 “소련·중공과 동구권 국가가 한국을 승인하지 않는 한 북한과의 외교 관계 수립을 않는다는 프랑스 정부의 종래의 대한반도 정책에 변화가 없다”(1982년 2월 24일 자 1면)고 밝혔다. 미테랑은 재임 기간 내내 인권 문제를 이유로 북한과 수교를 거부했다. 프랑스는 지금까지도 북한의 인권 탄압과 핵 개발을 이유로 수교를 하지 않고 있다.

미테랑은 1988년 재선에 성공해 1995년까지 재임했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최장 기간인 14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이 기간 독일 통일(1990년 10월), 소련 붕괴(1991년 12월), 유럽연합 창립(1993년 11월) 등 급격한 국제정치 변동이 있었다. 미테랑은 1992년 3월 “유럽 내 민족주의의 발흥에 따른 국가 간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EC와 유럽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을 결합한 유럽국가연합을 창설할 것”(1992년 3월 2일 자 5면)을 주창했다

1993년 9월 10일자 3면.

1993년 9월 10일자 3면.


미테랑은 한국을 처음 방문한 프랑스 대통령이다. 1993년 9월 14일 소피 마르소 등 문화계 인사를 비롯해 280명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미테랑은 방한 일정을 앞두고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한 외규장각 도서를 한국에 반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1993년 9월 10일 자 3면)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미테랑 방한 때 외규장각 도서 2권을 반환했다. 이후 한때 반환 불가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나 2011년 5년 계약 갱신 조건으로 전체를 반환했다. 미테랑은 방한 전 경부고속철도 사업에 프랑스 TGV 선정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미테랑은 퇴임 후 7개월 만인 1996년 1월 8일 별세했다. 이미 임기 초반에 전립선암이 발병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미테랑을 치료해 온 클로드 귀블레 박사는 미테랑 사후 출간한 저서에서 “미테랑이 대통령에 첫 당선된 지 6개월 후인 81년 11월 이미 전립선암을 앓고 있었으며 94년 말쯤 직책 수행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 있었다”(1996년 1월 18일 자 6면)고 밝혔다. 프랑스 언론은 “미테랑의 암 발병 사실을 알았다면 국민들이 88년 다시 그를 대통령에 뽑았을까”라고 미테랑의 암 발병 사실 은폐를 비판했다.

미테랑 암투병 은폐. 1996년 1월 18일자 6면.

미테랑 암투병 은폐. 1996년 1월 18일자 6면.


미테랑 집권기는 프랑스의 재정 위기가 시작된 시점이라고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을 지낸 손진석 기자는 평가했다.

“미테랑이 집권한 14년 사이 프랑스의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16%에서 28%로 급격하게 높아졌다. 생산성 저하와 실업률 급등 또한 그의 재임 기간부터 고질병이 됐다. 지금의 프랑스 재정 위기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따져보면 44년 전 취임한 미테랑의 과격한 지출 확대가 가장 큰 줄기다. 프랑스의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그의 집권 기간 동안 22%에서 56%가 될 정도로 수직 상승했다.”(2025년 10월 30일자 A34면)

[이한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