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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어때] 이 영화를 보시면 수명이 3배 늘어납니다, ‘하나 그리고 둘’

조선일보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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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어때] 이 영화를 보시면 수명이 3배 늘어납니다, ‘하나 그리고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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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77번째 레터 영화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명작 ‘하나 그리고 둘’입니다. ‘이런 명작을 새삼스럽게?’ 싶었지만 2030 관객분들껜 엄연히 신작일 수 있겠다 싶어 새해 첫 레터의 주인공으로 선택했습니다. 지난달 31일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25년 만에 재개봉했는데 개봉 5일 만에 관객 1만명이 넘었습니다. 레터 제목에 ‘여러분의 수명을 3배 늘려드린다’고 썼는데, 허풍이 아닙니다. 노란 티셔츠 꼬마 양양의 카메라에 뒤통수가 찍히고 나면 3배 정도는 너끈하고, 잘하면 그보다 더 오래 사실 수도 있답니다. 이 영화에 그 이유가 나오는데, 궁금하시죠. 말을 하고 보니 광화문 한복판에 좌판을 펴고 만병통치약 팔기에 나선 약장수의 심정이 되네요. 자자, 이 약, 아니 이 영화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의 8살 꼬마 양양은 아빠의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셔터를 누릅니다. 25년 전 국내 첫 개봉 때 영화 포스터에 쓰인 모습인데 영화 내용이 가물해졌을 때도 이 모습은 또렷했습니다. 영화를 만들고 보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양양의 렌즈에 맺혀있기 때문일까요./에무필름즈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의 8살 꼬마 양양은 아빠의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셔터를 누릅니다. 25년 전 국내 첫 개봉 때 영화 포스터에 쓰인 모습인데 영화 내용이 가물해졌을 때도 이 모습은 또렷했습니다. 영화를 만들고 보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양양의 렌즈에 맺혀있기 때문일까요./에무필름즈


한번 만났는데 기억에 박힌 사람이 있고, 한번 봤는데 잊히지 않는 영화 주인공도 있죠. 제겐 이 영화 ‘하나 그리고 둘’(감독 에드워드 양)의 꼬마 소년 양양이 그랬습니다. 러닝타임이 173분, 3시간에 가까운 긴 영화의 내용은 기억에서 흐릿해졌어도 노란 티셔츠를 입은 양양이 카메라를 든 모습은 또렷이 기억에 남았어요. 대만 타이베이에 사는 양양은 여덟 살. 영화는 의젓하게 정장을 빼입은 양양이 참석한 결혼식으로 시작합니다.

신랑은 양양 외삼촌 아디인데, 신부 배가 제법 불렀어요. 신랑이 길일에 결혼해야 한다며 식을 미뤄서 그렇다고 합니다. 축하와 흥이 넘치는 자리는 한 여성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그년 어딨어요! 그 임신한 년은 어딨냐고요!! 면상 좀 보자!!” 어허. 외삼촌의 전 여친이 깽판을 치러 온 것이었습니다. “내 남자를 돌려줘!! 너 그러다 천벌 받아!!” 아, 아디씨, 정말 길일 잡으신 거 맞나요.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시무룩한 꼬마 양양을 아빠 NJ가 맥도날드에 데려갔습니다./에무필름즈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시무룩한 꼬마 양양을 아빠 NJ가 맥도날드에 데려갔습니다./에무필름즈


범상치 않은 결혼식, 정말 길일이 맞나 싶게 식구들 한 명 한 명 예상치 못한 일을 겪습니다. 양양의 아빠는 NJ, 요즘으로 치면 IT 벤처기업의 창립 멤버입니다. 양양의 외삼촌, 그러니까 처남의 결혼식장에 갔던 NJ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뜻밖의 해후를 합니다. 30년 전 헤어진 첫사랑 그녀, 셰리였습니다. “어머, 당신 맞아? 아직 타이베이에 있었네. 난 지금 미국에 살아.” 반갑게 말을 건넨 그녀는 명함을 건네주고 돌아섰다가 갑자기 다시 다가오더니 정색하고 따져물어요. “그날 왜 안 나왔어? 난 계속 기다렸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여기서도 소동이 벌어지려나 했는데 다른 지인이 등장하면서 잠시 휴전. 그 사이, 몸이 안 좋아 일찍 귀가했던 양양의 외할머니가 쓰러졌습니다. 쓰레기봉투 때문이었어요. 양양의 고등학생 누나 팅팅이 무심결에 두고 온 걸 처리하러 나갔다가 그만. 뒤늦게 이웃이 발견해 급히 응급실로. 온 가족이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넉살 좋게 아디가 말합니다. “오늘이 길일이라 이 정도로 끝난거야.”

이렇게 양양, 아빠 NJ, 누나 팅팅, 할머니 등이 잇따라 소개된 영화는 각자가 휘말린 시간의 소용돌이를 보여줍니다. 제가 위에서 3시간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아요. 보다보면 어느새 식구들이 겪는 감정의 파고에 몰입하게 됩니다.

양양과 카메라의 만남도 그렇습니다. 양양이 카메라를 갖게 된 것은 아빠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마주친 옆집 여성이 계기였습니다. 어린아이의 천진한 감각이 남다른 양양은 그녀의 우울도 금세 알아챕니다. 같이 보고도 못 알아채는 아빠에게 양양이 물어요. “아빠가 보는 걸 나는 못 보고 나 보는데 아빠는 못 봐요. 둘 다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아빠는 “그래서 카메라가 필요한 거란다. 카메라로 찍어보렴”이라며 자신의 카메라를 건네줍니다.

그날부터 양양은 부지런히 셔터를 누릅니다. 둘 다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모습 말고 뒷모습도 보여주려고요. 나중에 영화에서 양양의 ‘뒤통수 컬렉션’을 보여주는데 저는 그 사진들이 한 장 두 장 넘겨질 때마다 까닭 모르게 뭉클해졌어요. 아마도 그래서 영화를 처음 보고 20년이 지나서도 카메라를 뜬 꼬마의 기억이 내내 잊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 '하나 그리고 둘'. 마음을 다친 팅팅과 할머니./에무필름즈

영화 '하나 그리고 둘'. 마음을 다친 팅팅과 할머니./에무필름즈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의 방은 가족의 고해소가 됩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 자신조차 몰랐던 심정을 토로하기 위해 식구들은 저마다 할머니의 침대맡을 찾습니다. 사실 그때 심정은 어땠노라,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데 진짜 내 맘은 이랬노라. 정말로 들어주는지 알 수 없는 할머니에게 고백하는 가족들. 그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와 닮아있습니다.

고백하는 식구 중에서도 팅팅의 심정은 더 절실합니다. 할머니가 쓰러진 게 쓰레기봉투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죠. 원래 그거 버리려던 게 팅팅이었으니까요. 팅팅은 할머니가 자기 때문에 쓰러졌다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할머니, 제가 까먹었어요. 저를 용서하신다면 제발 일어나세요. 안 일어나시면 제가 잠을 잘 수 없어요.” 할머니는 팅팅을 용서해주실까요.

제목에서 말씀드린 ‘3배의 수명’ 얘길 해드려야죠. 그러려면 팅팅의 사정을 아셔야 합니다. 양양이 카메라로 뒤통수를 열심히 찍는 사이, 누나 팅팅은 10대의 한 고비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인 이웃집 리리가 남친 패티와 헤어지면서, 팅팅이 패티와 사귀게 됩니다. 원래는 리리와 패티가 사랑 싸움을 하면서 팅팅이 중간에서 편지 전달을 했는데(휴대폰도 카톡도 없던 20년 전입니다) 관계가 급변한 거죠. 차분하고 정 많고 착한 팅팅이 새 남친 패티와 처음 영화를 보러간 날,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거의 정확하게 이 영화 중간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 대화에 의미심장한 언급이 있어요. 남친이 팅팅에게 “영화 재밌었냐”고 물어보자 팅팅이 “너무 진지하더라, 너무 슬픈 건 별로”라고 하면서 시작된 대화, 나머지 부분을 들어보시죠. 제 생각에 감독 에드워드 양의 평소 생각이 들어있지 않나 싶어서 음미해보시라고 전부 적어드려요.


남친: 현실엔 기쁨 슬픔이 함께하잖아. 영화는 현실을 닮아있어.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팅팅: 그럼 뭐하러 영화를 봐? 그냥 현실을 살면 되지.

남친: 우리 삼촌이 이런 말을 하셨어. ‘영화가 생겨난 후로 인간의 수명은 3배 늘어났다.’

팅팅: 정말? 말도 안 돼.

남친: 일상을 통해 얻는 것 말고도 영화를 통해 두 배의 삶을 더 경험한다는 거지. 예를 들면 살인 같은거. 우리가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잖아. 영화를 통해 그런 게 가능한 거지.

팅팅: 그래서 내가 얻는 이득이 뭔데? 인생이 그렇게 끔찍하면 뭐하러 살아? 친절을 베풀면 돌려받기 마련인데 꼭 살인할 필요가 있을까.

남친: 다른 이유도 많지. 삼촌이 하신 말씀 중에 ‘구름과 나무가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난 그 말에 엄청 감동받았어. 여러 면에서 날 바꿔놨지.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서 30년 만에 재회한 셰리(왼쪽)와 NJ. 다시 만나자고 하는 셰리에게 NJ의 답은./에무필름즈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서 30년 만에 재회한 셰리(왼쪽)와 NJ. 다시 만나자고 하는 셰리에게 NJ의 답은./에무필름즈


맞지 않나요. 영화 덕분에,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몇 배로 삶을 더 경험하고 알아채면서 살 수 있게 됐으니까요. 수명이 3배쯤 더 늘어났다는 패티 삼촌의 주장에 저도 적극 동의합니다. 이 영화 ‘하나 그리고 둘’ 같은 영화는 3배라로도 부족할 거 같네요. 팅팅이 저 대화 이후 남친과 겪게 되는 일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 뒤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거든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멀리 일본 도쿄로 출장간 아빠 NJ만 해도 그렇죠. NJ는 도쿄에서 위에 말씀드린 첫사랑 셰리를 또 만나게 되는데 둘이 옛날 얘기를 하며 건널목을 건너는 장면과, 같은 시각 팅팅과 남친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면이 엇갈리며 보여집니다. 그런데 NJ가 셰리에게 건네는 대사가 그대로 팅팅의 상황에 맞아떨어져요. NJ가 “그때 생각나? 당신 손을 처음 잡았을 때 영화 보러 가려고 철길을 건널 때였잖아”라고 말할 때 카메라는 남친과 횡단보도를 건너는 팅팅을 보여줍니다. NJ가 “다시 당신 손을 잡았네. 그때와 장소가 다를 뿐. 다른 시간, 다른 나이에”라고 말할 때 딸 NJ가 다른 시간, 다른 나이에 같은 상황을 지나고 있죠. 이 신을 꼭 영화에서 만나보시길.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절대 불변의 것들, 지나온 세월, 지나갈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의 꼬마 양양. 아무도 찍어주지 못한 너의 뒷통수가 여기에 남았구나. 고마워, 양양./에무필름즈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의 꼬마 양양. 아무도 찍어주지 못한 너의 뒷통수가 여기에 남았구나. 고마워, 양양./에무필름즈


아마도 양양은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은 분신인 것 같습니다. 양양은 할머니에게 바친 다짐에서 “나중에 커서 그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고, 볼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럼 정말 즐거울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데 에드워드 양 감독이 실제로 영화를 만들면서 볼 수 없는 걸 보여줬으니까요. 그가 2007년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영화가 ‘하나 그리고 둘’입니다. 영화 제목의 의미에 대한 그의 답을 마지막으로 이번 레터를 마무리할게요.


“이 영화는 아주 단순합니다. 그저 삶을, 그 전부의 스펙트럼을 따라 차근차근 보여주는 이야기죠. 인생의 모든 복잡한 문제들의 밑바닥에는 결국 단순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어 제목을 ‘일일(一一)’이라고 지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옮기면 ‘하나하나’인데, 중국어에서 ‘하나하나’는 개개인을 뜻하기도 합니다. 즉, 이 영화는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서로 다른 나이를 살아가는 각각의 사람을 통해 삶을 바라보려는 시도예요. 삶이라는 건 결국 개개인의 시선, 개개인의 순간을 통해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니까요.”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라고 해도 ‘모르는 걸 알려주고, 볼 수 없는 걸 보여주는’ 영화가 그렇게 흔하진 않잖아요. ‘하나 그리고 둘’은 OTT에 없어요. 이번 기회에 꼭 극장에서 보시길. 쓰다보니 하염없이 길어져서 서둘러 줄여야겠습니다. 그럼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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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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