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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요건 몰랐죠?] 눈 농사 짓고, 눈 공장 가동… 첨단 기술로 ‘눈 가뭄’ 걱정을 지우다

조선일보 이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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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요건 몰랐죠?] 눈 농사 짓고, 눈 공장 가동… 첨단 기술로 ‘눈 가뭄’ 걱정을 지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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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스키 경기장 ‘눈 확보 작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북동쪽으로 약 200㎞, 인구 7000명의 알프스 산간 도시 리비뇨는 요즘 ‘눈 단장’에 한창이다. 다음 달 6일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개막을 한 달 앞두고 막바지 건설 중인 스키 슬로프를 비롯해 온 도시가 설국(雪國)으로 변신 중이다. 스노보드, 프리스타일스키 등 밀라노 올림픽 설상(雪上) 종목 금메달 26개의 주인공이 이곳에서 가려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리비뇨에선 ‘눈 가뭄’ 우려가 나왔다. 지난해 12월 초 낮 기온이 평년보다 섭씨 3~5도가량 오르는 이상 기온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요한 엘리아쉬 FIS(국제스키연맹) 회장은 ‘제설(製雪)’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올림픽 개막 때까지 준비가 안 될 것 같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래픽=박상훈

그래픽=박상훈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이탈리아 정부는 이런 지적에 느긋했다. 리비뇨 시와 현지 언론은 “올림픽 때 눈 부족을 걱정하는 것은 미국 마이애미에 서핑할 물이 없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이런 자신감의 근거는 두 가지 첨단 기술 덕분에 가능하다. 농사 지은 곡물을 비축하듯 눈을 저장하는 ‘스노파밍(snowfarming)’ 기술과 공장처럼 손쉽게 눈을 만들어내는 ‘스노팩토리(snowfactory)’ 기술이다.

스노파밍은 직전 겨울에 내린 눈을 야외에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해발 1819m의 고지대에 있는 리비뇨는 유럽에서 ‘스노파밍의 성지’로 꼽힌다. 리비뇨는 매년 3~4월까지 내린 눈을 도시 한가운데에 모아뒀다가 8월에 꺼내 크로스컨트리 축제를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스노파밍으로 모은 눈을 방출해 10월에 스키장을 조기 개장하기도 한다. 한여름에도, 이상 기온이 찾아와도 언제든 눈을 공급할 수 있는 노하우를 쌓아온 것이다.

눈을 그저 쌓는다고 스노파밍이 되는 게 아니다. 공기에 노출되는 면적을 최소화하고, 배수가 용이하도록 언덕처럼 눈을 쌓는 것이 노하우다. 쌓인 눈 위로 우선 열전도율이 낮은 톱밥이나 우드칩을 덮고, 특수 섬유 제품인 ‘지오텍스타일’로 덮어 태양열을 반사시킨다. 톱밥은 외부의 열 침투를 방지하면서 불필요한 수분을 증발시키는 역할도 한다. 냉각 효과를 최대한 높여 눈이 압축돼 부피가 줄거나 녹는 것을 막는다. 레모 갈리 리비뇨 시장은 “올림픽에 쓸 눈은 100%, 아니 그보다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바이애슬론이 열리는 안테르셀바 지역에선 초소형 눈 제조 공장 ‘스노팩토리(snowfactory)’가 활약한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눈을 만들어 외부 환경에 관계없이 녹지 않고 쌓이게 하는 기술이다.

선풍기 모양의 일반 제설기로 눈을 만들려면 보통 대기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야만 한다. 대기에 물을 뿌렸을 때 그 즉시 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새도록 제설기를 가동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스노팩토리 제조사인 테크노알핀 측은 “영상 25도에서도 눈이 쌓이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컨테이너 안에서 물을 냉각시켜 얇고 납작한 얼음 플레이크로 만드는데, 얼음 입자의 밀도가 높고 건조해 쉽게 녹지 않는 것이 차별화된 기술이다. 일반 제설 작업 때는 손실률이 20% 정도인데, 스노팩토리로 만든 눈은 손실률이 5%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작은 컨테이너 형태인 스노팩토리를 트럭으로 쉽게 옮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시기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양의 눈을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제설 기술에 AI를 접목한 것도 눈에 띈다. 라이다(LiDAR)가 탑재된 차량이 올림픽 설상 종목이 열릴 슬로프 등을 돌아다니면서 눈이 얼마나 두껍게 쌓였는지를 자동으로 측정하고, AI가 이를 분석해 눈 보충이 필요한 지역에서 스노팩토리를 가동시켜 최적의 상태로 경기장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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