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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도 할머니도 토슈즈 신었다… 일상 파고든 ‘취발러’

조선일보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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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도 할머니도 토슈즈 신었다… 일상 파고든 ‘취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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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온 세대 ‘취미 발레’ 열풍
발레 패션도 덩달아 인기
서울 종로구에 사는 직장인 이영은(38)씨는 지난해 9월부터 ‘취발러’가 됐다. 취발러는 전문 발레리나가 아니라 ‘취미로 발레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신조어. 이씨는 “어렸을 때부터 발레리나를 동경해 왔고, 한 번쯤 배워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며 “유치원 다니는 딸의 발레 수업을 알아보다 성인 발레반도 있다는 걸 알고 등록했다”고 말했다.

다른 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게 느껴졌던 발레가 취미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발레가 미취학 아동의 취미로서 ‘필수 예체능’처럼 여겨진 건 한동안 이어져 온 일이다. ‘남자아이는 태권도, 여자아이는 발레’라는 말이 나올 정도. 최근에는 취미로 발레를 즐기는 어른들이 늘면서, ‘취발러’라는 개념이 성인층까지 확장됐다. 수지·박규영·박지현 등 요즘 대세 여배우들이 SNS를 통해 공개한 발레 사진은 유행의 도화선이 됐다. 2030세대뿐 아니다. 노년층의 근력 운동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헬스는 부담스러운데 생활 근육은 키우고 싶은 시니어 세대로까지 발레 열풍이 번지고 있다.

발레하는 가수 겸 배우 수지. /SNS

발레하는 가수 겸 배우 수지. /SNS


◇우리 할머니는 ‘취발러’

서울 강남구 세곡동 ‘은곡시니어센터’에선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시니어 발레’ 수업을 한다. 60~70대가 주 대상이지만, 80대 취발러도 있다. 2024년 12월 개관한 이 센터는 개관 당시 한 달간 시니어 발레 시범 수업을 열었다. 대기자가 생길 만큼 수업이 인기를 얻자, 지난해 봄 정규 과정이 생겼다.

은곡시니어센터 권서윤 사회복지사는 “신노년 세대에 적합한 프로그램이 무엇일지 고민하던 중 몸의 유연성을 기르고, 코어 근육을 강화해 자세 교정 효과 등을 볼 수 있는 발레를 구상하게 됐다”며 “회차마다 20~30명의 대기 인원이 생길 정도로 호응이 크고 어르신들 반응도 좋다”고 했다. 토슈즈 신고 발레복 입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진다고 만족감을 나타내는 어르신도 있다고 한다. 권 복지사는 “수업을 통해 어르신들 몸과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게 큰 보람”이라고 했다.

이곳뿐 아니다. 최근엔 시니어 발레 지도자 자격증 과정이 따로 있을 만큼, 각 구청 시니어센터나 사설 발레 학원에서도 시니어 발레 교실이 성업 중이다. 시니어 발레는 정식 발레 동작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부상 방지를 위해 다리를 높이 올리는 동작이나 점프는 최대한 배제한다. 대신 근력과 균형 감각, 유연성과 감정 표현 능력을 기를 수 있는 동작 위주로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강남구 세곡동 은곡시니어센터에서 회원들이 발레를 배우고 있다. /강남구립 은곡시니어센터

서울 강남구 세곡동 은곡시니어센터에서 회원들이 발레를 배우고 있다. /강남구립 은곡시니어센터


◇일상 침투한 ‘발레복’

발레가 취미의 영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2030 여성이 많이 이용하는 플랫폼 ‘지그재그’에선 지난해 11월 발레복 거래액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6배 이상 급증했다. 다른 발레 관련 용품도 판매가 늘었다. ‘발레 워머’(발레리나들이 부상을 막기 위해 근육을 따뜻하게 보호하려고 착용하는 니트 소재의 토시)는 6배, ‘발레 타이츠’는 2배 늘었다.


발레복을 일상 패션에 접목한 ‘발레 코어(Ballet Core)’도 덩달아 인기다. 특히 발레 워머를 일상복에 조합해 착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발레 코어라고 해서 꼭 전형적인 발레복 형태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스트랩 카디건’이라고 불리는 끈 달린 카디건도 발레복에서 유래했다. 가슴 앞부분을 엑스(X)자로 교차해 끈으로 묶는 디자인인데, 발레리나들이 연습 전 워밍업할 때 입는 옷에서 온 것이다.

리본이나 레이스가 자주 눈에 띄는 것도 발레 코어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아떼 바네사브루노는 최근 헬로키티와 협업한 ‘르봉(RUBAN)백’ 초도 물량을 10일 만에 다 팔았다. 르봉은 프랑스어로 ‘리본’을 뜻한다. LF패션 관계자는 “발레복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로맨틱한 분위기는 그대로 살린 게 특징”이라면서 “의상에서 주로 사용되던 발레 코어 감성을 가방으로 옮겨오며 한 단계 확장시켰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2026년에도 발레 코어 트렌드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행의 아이콘인 ‘블랙핑크’ 제니가 지난달 20일 열린 멜론뮤직어워드(MMA)에 발레 치마에서 착안한 ‘샤스커트’를 입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MMA에서 발레복에서 영감을 받은 일명 샤스커트를 입은 제니. /SNS

지난달 20일 MMA에서 발레복에서 영감을 받은 일명 샤스커트를 입은 제니. /SNS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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