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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321] 성당의 진짜 얼굴

조선일보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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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321] 성당의 진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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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요르카 대성당(Cathedral de Palma de Mallorca). 방문객들로 하루 종일 붐비지만 관람시간이 지나고 성당 문이 닫히면 주민들이 하나씩 등장, 인파가 사라진 고요함을 즐긴다.

스페인 마요르카 대성당(Cathedral de Palma de Mallorca). 방문객들로 하루 종일 붐비지만 관람시간이 지나고 성당 문이 닫히면 주민들이 하나씩 등장, 인파가 사라진 고요함을 즐긴다.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는 웅장함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 같은 ‘팔마 대성당(The Cathedral of Santa Maria of Palma)’이 있다. 처음엔 이슬람 사원으로 지어졌다가 후에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되며 약 400년에 걸쳐 완성된 고딕 건축의 걸작이다. 장대한 규모와 더불어 바로크 양식의 벽화, 지름 14m의 장미창, 20세기 초 복원 때 가우디가 디자인한 제단 등으로 유명하다. 섬 방문객들로 하루 종일 붐비지만 관람 시간이 지나 문이 닫히면 성당 주변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인파가 사라진 고요함을 기다린 듯 주민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석양을 보며 사색에 잠긴 노인, 지중해의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속삭이는 연인들이 성당의 테라스를 더 아름답게 장식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멕시코의 ‘산 미겔 데 아옌데(San Miguel de Allende)’에는 유명한 대성당 이외에도 크고 작은 성당이 많다. 그 성당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마을 주민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공유한다는 점이다. 정성껏 정원을 꾸미고 놀이터나 벤치를 마련해, 미사가 없는 시간에도 주민들의 휴식·여가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종교를 기반으로 한 서양 중세 사회에서 성당은 모든 생활의 중심이었다. 도시의 심장부에 세워진 성당 주변으로 필요한 시설들이 들어섰다. 오늘날까지 성당 앞 광장 주변에 도서관이나 마을회관 같은 공공시설, 레스토랑과 상점 같은 상업 시설이 배치된 근원이다. 실제로 유서 깊은 성당을 방문해보면 미사나 기도를 하는 현지인 못지않게 관광객이 많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인류의 귀한 유산이자 역사와 문화를 담아낸 보고(寶庫)를 마주하고 종교적, 건축적 경이로움을 느끼는 경험은 특별하다.

성당이 이렇게 종교적 기능을 초월해 방문객을 포용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깊은 산중에 위치한 우리나라 사찰도 평소에 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문을 열어놓았다. 본래 절의 기능일 것이다. 종교의 본질적 가치인 포용은 교리뿐만 아니라 공간 활용을 통해서도 베풀 수 있다.

멕시코 산 미겔 데 아옌데(San Miguel de Allende)의 성당(Templo del Oratorio de San Felipe Neri). 성당 앞 광장에 작은 정원을 꾸미고 벤치를 마련해서 미사가 없는 시간에도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배려한다.

멕시코 산 미겔 데 아옌데(San Miguel de Allende)의 성당(Templo del Oratorio de San Felipe Neri). 성당 앞 광장에 작은 정원을 꾸미고 벤치를 마련해서 미사가 없는 시간에도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배려한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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