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 수원 사업장과 LG이노텍 마곡 본사./각 사 제공 |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서버용 기판 물량이 늘고 있지만, 국내 인쇄회로기판(PCB) 업계의 표정은 밝지 않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공장 가동률이 높아도 원가 부담이 가파르게 커지면서 수익성이 압박받는 구조다.
1일 한국전자회로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판 업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올해 들어 금과 구리 구매 가격은 연초 대비 각각 약 50%, 30% 급등했다. 문제는 이런 상승분을 납품 단가에 즉시 반영하지 못하는 기업이 절반을 넘었다는 점이다. 기판은 고객사와 장기 공급 계약을 맺거나 분기 단위로 가격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아, 원가가 먼저 뛰고 단가는 늦게 조정되는 구간이 생기기 쉽다.
금과 구리는 반도체 기판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다. 구리는 회로를 만드는 동박과 배선 층의 핵심 재료이고, 금은 접점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도금 등에 쓰인다. AI 가속기나 데이터센터용 고사양 기판일수록 회로가 더 촘촘해지고 층수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 정밀 공정에 필요한 소재 사용량이 커진다. 여기에 고환율이 겹치면서 수입 원자재 비중이 높은 업체는 부담이 더 늘어난다. 공급 물량이 늘어도 원가가 더 빠르게 뛰면서 수익성을 갉아먹는 형편이다.
증권업계의 분석을 종합하면 PCB 제품의 전체 생산 원가에서 구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8%에서 20% 수준으로 추정된다. 다만 구리를 가공하고 재고를 보유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더 높아진다. PCB 기판의 종류에 따라 고전류가 필요한 부품이나 두꺼운 동막이 필요한 경우 구리 가격 부담이 더 커진다.
삼성전기, LG이노텍 등 주요 업체의 생산 현장에서 구리 가격 급등에 따른 수익성 타격은 더 크다는 분석이다. 국내 대형 소재업체 관계자는 “PCB 업체들 중 특히 범용 제품 비중이 높은 대기업들은 수익성 압박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AI 서버용 반도체 기판의 경우 납품가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하지만, 해당 분야는 아직 이비덴(Ibiden) 등 일본 기업들이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존 PCB 사업 구조의 한계가 분명해지면서 업계의 시선은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소재인 유리기판으로 옮겨가고 있다. 유리기판은 기존 플라스틱 기반 기판보다 열에 강하고 휘어짐이 적어, 고집적 칩에 필요한 초미세 회로 구현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호 손실을 줄여 데이터 전송 성능을 끌어올릴 여지가 있고, 전력 효율도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무엇보다 공정 난도가 높아 초기 시장을 선점하면 단순 단가 경쟁에서 벗어나 제품 믹스를 고도화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다만 유리기판은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유리 내부를 관통하는 미세 구멍 가공과 도금, 대면적 공정에서의 수율 확보, 파손과 균열 관리 같은 과제가 동시에 풀려야 한다. 장비와 공정 조건이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양산 속도와 원가 경쟁력이 관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기는 유리기판 개발과 생산 체제 구축에 나섰고, 삼성전자는 장기적으로 실리콘 인터포저를 유리 인터포저로 대체하는 기술을 준비 중이다. SKC와 LG이노텍 역시 북미 고객사 대응과 시제품 개발을 통해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황민규 기자(durchm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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