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동아일보 언론사 이미지

상서롭고 힘찬 기운 가득… 병오년, 행운-도전 ‘두마리 말’ 탄다

동아일보 이지윤 기자
원문보기

상서롭고 힘찬 기운 가득… 병오년, 행운-도전 ‘두마리 말’ 탄다

서울맑음 / -3.9 °
역사-문화로 본 ‘말의 해’
십이지신도 중 말을 상징하는 ‘오신(午神)’.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십이지신도 중 말을 상징하는 ‘오신(午神)’.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2026년 병오년(丙午年) 말띠 해가 밝았다.

설화에 따르면 ‘천년왕국’ 신라를 세운 혁거세는 말이 싣고 온 알에서 태어났다. 고구려를 세우고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던 주몽도 말을 잘 탔다. 이처럼 말은 우리 선조들에게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새 나라의 출현’을 알리고, ‘간절한 염원’을 실어나르는 상서로운 영물이었다.

●진취적 현대인에 잘 어울려

국보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天馬圖)’.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국보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天馬圖)’.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말은 십이지(十二支) 중에 용, 호랑이와 더불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띠 동물로 꼽힌다. 국보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天馬圖)’ 등에서 볼 수 있듯, 하늘을 치달리는 백마나 천리마, 용마(龍馬) 등은 멀리 나아갈 힘과 자유를 상징한다. 불교 사후세계를 그린 ‘시왕도’에선 죽은 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신성한 존재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유독, 여성에겐 말띠가 그리 반갑지 않다. ‘팔자가 세다’는 선입견이 세간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고문헌에서도 이런 속설의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십이지 전문가인 천진기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장은 “전통적으로 말띠 여성을 꺼리는 일본의 풍조가 일제강점기에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천 위원장에 따르면 실제로 조선 왕비 중엔 정현왕후(1462∼1530) 등 말띠가 다섯 명이나 된다. 말띠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단 뜻이다. 그는 “여성의 띠로 양 등을 선호하던 관습은 진취성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현대 사회엔 맞지 않는 옛말”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를 ‘붉은 말의 해’로 부르는 것도 우리 전통과 거리가 멀다. 병오년이 불(火)의 기운을 뜻하지만, 색깔과 결부해 해석하는 건 곤란하다. 하도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오방색을 붙여 ‘붉은 말(赤馬·아카우마)의 해’라 일컫는 문화도 일제강점기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통적 근거가 약할뿐더러 ‘황금돼지의 해’처럼 상업적인 성격이 짙다”고 했다.


●‘말뚝박기’도 말에서 유래돼

죽은 이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기마인형 ‘꼭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죽은 이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기마인형 ‘꼭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한민족은 적어도 석기시대부터 말과 함께 삶을 이어왔다.

민속박물관이 발간한 ‘한국민속상징사전―말 편’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과 경남 김해 패총 등에서 발견된 말의 치아가 그 근거. 김병선 제주한라대 생명자원학부 교수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육한 건 청동기 시대부터로 본다”며 “동예와 고구려엔 키 작은 과하마(果下馬)가 있었다”고 부연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에도 말은 중요한 운송·이동 수단이었다. 6·25전쟁 이후 서울에선 마차와 군마가 바삐 오갔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며 ‘방해물’ 취급을 받았고, 결국 관광용 말고는 도심에서 사라졌다. 이젠 지명에서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목마장이 있던 서울 성동구 마장동, 자마(雌馬·암말)를 기르던 광진구 자양동 등이다.


정연학 비교문학회장은 “1950년대 말엔 말수레꾼들이 시장이나 역 근처에 있다가 짐을 실어 나르곤 했다”며 “도로에 자동차가 달리고, 우마차 통행금지 구역이 생기며 말은 도시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말은 여전히 우리 언어와 생활 속에서 함께한다. 더 잘하라고 재촉하거나 격려할 때 쓰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이 대표적이다. ‘말뚝박기 놀이’에서 말뚝이란 나무나 쇠기둥이 아니라 ‘말이 둑처럼 늘어선’ 모양을 일컫는다.

서양에서도 말은 존귀했다. 영미권엔 ‘말 편자를 발견하면 행운이 온다(If you find horseshoe, you’ll have a good luck)’는 속담이 있다. 마침 행운을 전해주는 편자를 포함해 세계 말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 ‘말(馬)들이 많네’가 민속박물관에서 3월 2일까지 열리고 있다. 장상훈 관장은 “동서 불문하고 인류의 공간적 한계를 넓히는 데 기여했던 말에는 ‘새로운 세계로 도전한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