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고양이의 사체가 유기물로 사멸해가는 모습을 그린 방정아 작가의 신작 ‘흩어지고 있었어’. 3층 전시실 안쪽 구석에 내걸려 있는 걸개그림 형식의 그림이다. 노형석 기자 |
부산에서 작업해온 중견 화가 방정아(57)씨는 최근 키우다 죽은 고양이의 사체를 떠올리며 거대한 걸개그림을 그렸다. 버려진 반투명천들을 기워 가로 5m 넘고 세로 3m에 육박하는 거대한 화폭을 만들고 생명이 빠져나간 몸이 어떻게 변화해 사라지는지 상상하며 반려묘 사체 위에 들끓는 구더기들을 그려 넣었다. 눈 감은 고양이의 머리와 웅크린 뒷발과 아래 몸체에 떼로 모여든 구더기들은 누런 잔잎처럼 사방으로 흩어져나가면서 사멸의 흔적을 퍼뜨리고 있었다.
지금 광주 운암동 광주시립미술관 3층 전시실 구석에 내걸린 방정아의 올해 신작 ‘흩어지고 있었어’의 모습이다. 생명체의 사라지는 흔적이 아로새겨진 이 작품은 기묘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기운 천 화폭들이 겹겹이 비치며 너울거리는 속성 때문에 전시 공간의 조명, 움직이는 관객의 시선과도 조응하면서 도시 공간에서 소외된 비인간적 존재들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방정아 작가는 한국 사회의 일상에서 끄집어낸 섬뜩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상상력과 감각으로 풍경과 생명, 사물의 이면을 파헤쳐온 아티스트다. 현재 국내 중견 여성 화가들 가운데 가장 다채로운 갱신의 행보를 보여온 그가 이곳에서 열고 있는 오지호미술상 수상 기념전 ‘묻다, 묻다’(1월18일까지)의 전시 현장에서 최근 더욱 핍진한 필치와 감각으로 자신의 내면과 시대, 삶, 자연의 단면들을 파고드는 작가의 현재진행형 작업들을 만나게 된다. 전시는 사회와 여성, 생태와 일상이라는 네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43점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1990년대 초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노동 현장과 여성들의 고달픈 일상, 생태환경, 남북문제 등 여러 사회적 현실을 나름의 감각적 색채와 필선으로 해석한 주요 대표작들이 나온 회고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더욱 주목되는 이번 기념전의 성취는 최근 형식과 태도를 일신하려 애쓴 그의 근작들과 전시의 계기가 된 한국 인상주의 대가 오지호(1905~1982)의 작가적 태도를 더듬어보는 탐구 작업의 결과물들이다.
1섹션 서두에 내걸린 방정아 작가의 신작 소품 ‘손’. 노형석 기자 |
1섹션 서두에 내걸린 방정아 작가의 신작 소품 ‘손’은 전시의 의미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작가가 지난해 수상하며 기념 전시 계기가 된 오지호미술상의 주인공 오지호의 손을 떠올리며 그렸다. 작가는 오지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품격을 붓을 수직으로 세워 그려나가는 중봉의 방식으로 해석했다고 작업 노트에 적었다. 한국전쟁 당시 광양 백운산에 오 작가가 들어가 남부군 일원으로 빨치산 활동을 할 당시 산에 미술 도구를 묻었던 행적과 그때 그의 심경을 추체험해 떠올리면서 실제로 이 작품을 백운산 계곡의 땅에 묻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관련 영상도 보여준다. 어떤 이데올로기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부름에 작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를 그는 ‘손’이란 그림으로 묻고, 이 그림을 땅에 묻고 다시 꺼내어 전시하는 중의적 퍼포먼스를 통해 이야기한다.
형식적 맥락에서는 필선의 변주와 천을 기운 걸개그림풍의 형식 실험이 눈에 띈다. 2018년 이석증으로 현기증을 앓으며 고통스러워했던 체험을 담은 ‘이석증’이란 자화상적 그림 이래 본격화하기 시작한 추상적 이미지의 잔선들이 출몰하는 필력의 흐름이, 이후 미군부대의 폐유 문제나 2020년대 이후 한국인 군상의 불안한 내면, 도시의 폭력적 구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의 흔적을 나타내는 작업에 변주되어 나타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얼비치는 폐천들을 기워 겹으로 하늘거리게 하면서 관객과 작품이 서로 마주보고 투사하는 관람 방식과 전시장의 공간 구조 만들기도 작가는 제안하듯 내놓았다.
전시의 마지막 4섹션 ‘일상’에 나오는 작가의 2022년 작 ‘열정을 대하는 태도’. 노형석 기자 |
4섹션 ‘일상’에 나오는 작가의 2022년 작 ‘열정을 대하는 태도’는 전시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부산의 해수욕장에서 사람들이 바다의 파도를 마주할 때 보이는 움직임을 담은 이 작품은 파도에 뛰어들거나 망설이거나 관조하는 여러 피서객들의 각양각색 모습에서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관점의 다기함에 대한 작가 나름의 유머스러한 성찰을 내비친다.
현대미술은 태도를 중시한다. 전시에서 태도는 형식이 되고, 작가는 갈수록 달라지는 태도와 관점을 형식으로 변모시키면서 진화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 화단에서 누구보다도 태도의 윤리를 고심해온 실력파 여성 작가의 고투를 절실히 드러내고 있는 현장이다.
광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