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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24년前 “우크라는 우리 땅” 아들 부시에 본심 드러냈다

조선일보 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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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24년前 “우크라는 우리 땅” 아들 부시에 본심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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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기밀 해제 문서에 푸틴 “소련 붕괴로 영토 뺏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가진 첫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라고 주장했던 내용의 미국 기밀 문서가 공개됐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최근 공개된 이 문서는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이 푸틴의 오랜 역사관과 영토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한다. 푸틴은 이전부터 우크라이나 침공을 “NATO 등 서방의 대(對)러시아 압박을 막기 위한 방어 수단”이라고 주장해왔다.

2001년 6월 16일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서 만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슬로베니아 미·러 정상회담 공식 홈페이지

2001년 6월 16일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서 만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슬로베니아 미·러 정상회담 공식 홈페이지

미국 국가안전보장문서보관소(National Security Archive)가 정보공개 소송을 거쳐 22일(현지 시각) 공개한 2001년 6월 슬로베니아 미·러 정상회담 대화록에 따르면, 푸틴은 당시 부시 대통령에게 “소련의 붕괴로 러시아가 수천 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자발적으로 포기했다”며 일종의 ‘역사 강의’를 했다고 한다. 푸틴은 총리였던 1999년 12월 31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사임과 함께 대통령 권한대행에 올랐고, 2000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대통령이 됐다.

이어 “우크라이나는 수세기 동안 러시아의 일부였는데 당 간부들이 줘버렸다(given away)”며 “카자흐스탄도, 코카서스 지역도 마찬가지다. 소련의 선의(goodwill)가 세상을 바꿨지만, 돌아온 건 영토 상실뿐”이라고 주장했다. 1980년대 동구권 민주화 여파로 러시아와 함께 소비에트 연방을 이루던 공화국들은 연 이어 연방 탈퇴를 선언, 1991년 12월 26일 소련은 공식 해체됐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 회견에서 “푸틴의 눈에서 영혼을 보았고 그를 신뢰한다”고 평했으나, 정작 푸틴은 그 자리에서 구 소련 영토 회복에 대한 야심을 내비친 셈이다.

2001년 6월 16일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서 만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미 백악관

2001년 6월 16일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서 만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미 백악관


집권 초기 푸틴은 서방과의 협력을 모색하며 “러시아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공개된 대화록에서 그는 “러시아는 유럽이고 미국처럼 다민족 국가이니 동맹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서방 세계에 편입되겠다는 순수한 의도라기보다,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해 러시아 국경 턱밑까지 오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발언이었다고 분석한다. 나토 내부에서 러시아를 향한 압박을 통제하거나, 가입이 거절되면 이를 명분 삼아 서방을 적대시하려는 포석이었다는 것이다.

푸틴의 불만은 시간이 지날수록 노골적인 경고로 변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 중 2008년 소치 회담 기록을 보면, 푸틴은 부시에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장기적인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인공적인 국가(artificial country)”라고 못 박았다. 당시 서방 외교가는 이를 푸틴의 단순한 불평 정도로 치부했으나, 이는 명백한 침공 예고였다는 게 현대의 평가다. 이 발언은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현실화되었다.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연합뉴스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연합뉴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종전 협상을 하루 앞둔 27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규모 미사일 공습을 감행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키이우 전역에 공습경보가 울렸으며 방공망이 가동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번 회담을 위해 나토 가입 요구를 유보하는 내용을 포함한 평화안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푸틴은 협상 직전까지 무력 시위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게 굴욕적인 정전 협상안을 받아내려는 심산”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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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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