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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아내 살해한 남편 사면됐다…伊서 불붙은 '조력사' 논쟁

중앙일보 한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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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아내 살해한 남편 사면됐다…伊서 불붙은 '조력사'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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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0일(현지시간) 영국 의회가 안락사 법안 표결을 앞둔 가운데, 런던에서 말기 환자를 위한 안락사법 지지자들이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월 20일(현지시간) 영국 의회가 안락사 법안 표결을 앞둔 가운데, 런던에서 말기 환자를 위한 안락사법 지지자들이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탈리아 정부가 말기 암 투병 중이던 아내를 살해한 남편을 사면·석방하면서 조력사 합법화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이던 프랑코 치오니(77)가 지난 22일 석방됐다. 세르조 마타텔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사면을 결정한 데 따른 조치다.

치오니는 2021년 4월 자택에서 암 투병 중이던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을 해왔다. 사망 당시 그의 아내는 68세로, 암세포가 폐에서 뇌로 전이된 상태였다.

법원은 지난해 치오니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배우자의 긴 투병 기간 헌신과 인간적인 지지를 무시할 수 없다”며 정상참작 사유를 들어 비교적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출소 후 치오니는 “내가 저지른 일, 그리고 그 행동에 따른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병은 환자만의 것이 아니며 간병인도 병들게 된다”라며 “생의 마감, 그리고 간병인과 관련된 현대법은 먼저 의회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의회에 조력사 합법화 논의를 촉구한 발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2024년 7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환자의 연명 치료 거부는 허용됐지만, 조력사를 포함한 안락사는 대부분의 주에서 원칙적으로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가톨릭교회, 치오니 석방 강력 반대



치오니에 대한 사면 이후 조력사 합법화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가톨릭 주간지 파밀리아 크리스티아나(기독교 가정)는 “치오니의 사면 결정은 더 이상 처벌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일 뿐”이라며 면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레오14세 교황은 치오니 석방 다음 날인 23일 기자들과 만나 고향인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최근 통과된 말기 환자 조력사 허용법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해당 법은 여명이 6개월 이내로 남았다고 판단되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내년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교황은 주지사 JB 프리츠커에게 직접 전화해 법안에 서명하지 말 것을 촉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가톨릭교회는 생명이 잉태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신성하다는 교리에 따라 조력자살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자기 생명 단절 행위에 반대해 왔다.

한편 의사의 도움을 받는 조력자살은 미국 일부 주에서 허용되고 있으며, 프랑스와 영국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도 관련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캐나다 등은 일정 요건 아래 안락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한국은 형법상 의사 조력자살과 안락사는 모두 불법으로, 형법상 의사 조력자살은 자살방조죄로, 적극적 안락사는 촉탁살인죄로 처벌한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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