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유럽향 9.6조원 계약 이어…FBPS 미국향 3.9조원 계약도 해지
美 전기차 보조금 9월 말 종료…완성차 전동화 속도조절, ESS로 대응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소재 LG에너지솔루션 본사 2023.7.27/뉴스1 ⓒ News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독일 프로이덴베르크 배터리파워시스템(FBPS)과 체결한 미국향 전기차 배터리 모듈 공급 계약을 해지했다. 지난주 포드와 유럽향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해지한 지 9일 만이다. 지난 9월 말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 폐지 여파가 현지 전기차 시장 침체에 따라 장기화하는 모습이다.
獨 FBPS, 美 배터리 사업 철수 수순…2031년까지 LG엔솔 공급예정 물량 취소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독일 프로이덴베르크 배터리파워시스템(FBPS)과 체결한 미국향 전기차 배터리 모듈 공급 계약 중 공급 완료한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3조 9000억 원 상당의 물량 계약을 이날부로 해지했다. 해지 사유는 계약 상대방의 배터리 사업 철수다.
FBPS는 독일 프로이덴베르크 그룹을 모기업으로 둔 회사다. 2018년 북미 배터리 팩과 배터리관리시스템(BMS) 판매 기업인 액설트 에너지(Xalt Energy)를 인수하며 출범했다. 이후 미국 미시간주(州) 미들랜드에 팩 조립을 위한 기가 팩토리를 운영해 왔다.
양사는 지난해 4월 총 27억 9500만 달러 상당의 미국향 전기차 배터리 모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LG에너지솔루션은 1억 1000만 달러(약 1500억 원) 상당의 물량을 FBPS에 납품했다. 이날 취소된 물량은 이미 이행된 물량을 제외한 26억 8500만 달러(약 3조 9000억 원) 상당의 물량 전체다. 당초 2031년 12월까지 FBPS의 미들랜드 기가 팩토리에서 북미 시장에 판매될 대형 버스, 전기트럭에 탑재될 예정이었다.
해지된 계약 물량인 3조 9000억 원은 2023년 연간 매출(33조 7455억 원)의 11% 수준이다. 그럼에도 수주 잔고 감소 이외의 재무적 타격은 거의 없다는 게 LG에너지솔루션의 설명이다. 통상 전용 라인을 구축해야 하는 수주 계약과 달리 이번 건은 기존 생산 라인에서 제작할 수 있는 '표준화된 배터리 모듈'을 공급하는 계약이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용 설비 투자나 맞춤형 연구개발(R&D) 비용이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해지에 따른 투자 손실이나 추가 비용 발생은 없다"며 "불확실한 고객사를 정리하고 더 탄탄한 수요처를 발굴해 나갈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영국 던턴의 포드 기술센터에서 포드의 전기 상용 밴 'E-트랜짓'(E-transit)이 주행하는 모습(자료사진). 2023.01.13. ⓒ 로이터=뉴스1 |
포드,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집중키로…전기 상용밴 후속모델 개발 중단
그럼에도 불과 일주일 남짓한 기간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이 두 차례 취소된 만큼 LG에너지솔루션으로선 향후 수주 물량을 메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포드와 체결했던 약 9조 6000억 원 규모의 배터리 계약을 해지한다고 17일 공시했다. 이에 따라 2027년 1월부터 2032년 12월까지 75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를 포드에 공급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은 상호 합의 끝에 백지화됐다.
해지 금액은 LG에너지솔루션의 2023년 연간 매출액의 28%에 해당한다. 해당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에서 생산된 니켈·코발트·망간(NCM) 파우치형 배터리로, 포드의 유럽 내 전기 상용 밴 '이-트랜짓'(E-Transit) 후속 모델에 탑재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109GWh 규모 양사의 전체 계약 중 남은 34GWh 물량(2026~2030년)은 유지된다.
포드가 LG에너지솔루션과의 계약 규모를 매우 축소한 건 최근 회사 전동화 전략이 순수 전기차(BEV) 중심에서 내연기관을 남겨 놓은 하이브리드차(HEV) 중심으로 대폭 수정됐기 때문이다. 포드 미국 본사는 지난 15일(현지시각) 홈페이지를 통해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차세대 전기 픽업트럭(T3)과 차세대 전기 상용 밴 개발 계획을 모두 취소한다고 밝혔다. 포드가 차세대 상용 전기 밴 개발을 포기함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의 관련 납품 물량도 증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LG에너지솔루션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에서 직원이 배터리 생산 공정을 점검하는 모습(자료사진. LG에너지솔루션 제공). |
트럼프 보조금 종료에 美 전기차 판매 30%↓…LG엔솔, 세계최초 美서 ESS용 LFP 양산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철회가 포드의 전략 수정과 FBPS의 배터리 사업 철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제정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개정, 지난 9월 30일을 끝으로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100만 원)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 정책을 7년 앞당겨 조기 중단했다. 이는 전기차 판매 감소로 이어졌다.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 10월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30% 감소한 7만 4835대에 그쳤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전기차 시장 축소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현지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매진한다는 전략이다. 수주 잔고를 무리하게 유지하는 것보다 포트폴리오 재편에 적극 나서는 게 수익성 제고에 낫다는 판단에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6월부터 미국 미시간 공장에서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에 돌입했다. 글로벌 주요 배터리 업체 중 미국 내 ESS용 LFP 배터리의 대규모 양산 체제를 가동한 건 LG에너지솔루션이 처음이다.
미국 내 ESS용 LFP 배터리 시장은 밝은 편이다. 산업조사기관 블룸버그NEF는 미국 내 ESS 누적 설치량이 2023년 19GW 규모에서 2035년 250GW로 1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상당수는 LFP 배터리가 들어갈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ESS 시장 내 LFP 배터리 점유율은 80%에 달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품군과 차별화된 글로벌 생산 능력이 우리의 핵심 경쟁력"이라며 "ESS 등 미래 성장 동력에 자원을 집중해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사업 구조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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